[패밀리가 떴다] 도로공사 하혜진, “전설의 하종화? 나에겐 그냥 아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14일 05시 30분


‘한국배구의 레전드’ 하종화(오른쪽)와 딸 하혜진(도로공사)은 대를 이어 배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하혜진은 지금도 아빠만 보면 안기고 장난을 칠 정도로 살갑다. 김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한국배구의 레전드’ 하종화(오른쪽)와 딸 하혜진(도로공사)은 대를 이어 배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하혜진은 지금도 아빠만 보면 안기고 장난을 칠 정도로 살갑다. 김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둘이 만나는 순간, 걱정은 기우였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종화 전 현대캐피탈 감독(48)과 도로공사 하혜진(21)의 ‘배구 부녀(父女)’가 만나는 순간은, 마치 한국시리즈 우승 투수와 포수의 포옹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흔히 아빠와 다 큰 딸 사이에 있을 법한 어색함은 없었다. “하 전 감독이 내성적이라 인터뷰를 고사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들었는데, 딸과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취지를 전하자 흔쾌히 경남 진주에서 경북 김천의 도로공사 베이스캠프까지 올라왔다. 직접 만나본 하 전 감독은 의외로 차분한 달변이었다. 그리고 딸 앞에서는 한 시절, 한국배구를 주름잡았던 천하의 하종화도 어쩔 수 없는 한명의 아빠였다. 하 전 감독은 1남 3녀를 두고 있다. 하혜진은 둘째딸이다. 하혜진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나뭇잎만 봐도 생글생글 미소가 번지는 나이의 혜진이와 그런 딸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빠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하 전 감독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하종화-하혜진.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하종화-하혜진.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전설적 스파이커? 딸에게는 그냥 아빠

기자 : 생각했던 것보다 혜진이가 아빠를 좋아합니다.(웃음)

딸 혜진(이하 딸) : 어색하고 그런 거 없어요. 지금도 아빠 보면 달려가 안겨요. 아빠 보면 애교가 생겨요.(웃음)

아빠 종화(이하 아빠) : (지도자로 일하느라) 딸이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 못하다보니, 가끔 보니까 반가워서 그러는 것 같네요. 가족이 많았으니 집사람이 고생했을 겁니다.
딸 : 어렸을 때 엄마 얼굴이 많이 기억나긴 해요. 그래도 놀아줄 땐 아빠가 ‘짱’이에요. 아빠는 오랜만에 집에 오면 피곤해도 누워 있지 않고 놀아주려고 애썼어요.

기자 : 아빠가 지금으로 치면 문성민(현대캐피탈)급의 배구선수였는데요.

딸 : 나한테는 그냥 아빠에요.(웃음) 얘기는 많이 듣고 영상도 많이 봤어요. (그거 보면) ‘역시 레전드’구나 싶죠. (하 전 감독을 슬쩍 훑어보더니) 그런데 지금은 몸부터 달라졌어요.(웃음)

선수 시절 하종화. 동아일보DB
선수 시절 하종화. 동아일보DB

기자 : 혜진이 성격은 어때요?

아빠 : 혜진이는 조용한 성격인데 가끔 다른 지도자 얘기 들어보면 활달하고, 밝은 면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여튼 예쁘게 커줘 고마워요. 지도자 분들한테도 감사해요. 선수 생활은 자기가 고른 길이니까 잘 걸어갔으면 해요.”

기자 : 혜진이가 배구 시작한 계기는요?

아빠 : 진주에서 살았을 때, 마침 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있었어요. 아빠 따라서 배구장도 가고, 친근감이 있었을 거예요. 제대로 배구시키려고 여자배구 쪽에서 전문적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통영의 학교로 보냈어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네요. ‘하고 싶으면 해봐라’ 했죠. 다만 ‘운동이라는 길이 쉽지 않은데 하다가 포기하고 이러진 말아라. 가다보면 힘든 일도 있다. 왜 배구 했을까 절망감도 가질 수 있는데 극복할 자신 있으면 해봐라. 힘든 것 있으면 얘기해라’고 말해줬어요. 혜진이가 좋아서 했던 거죠.

기자 : 아빠가 권위적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딸 : 의견을 많이 들어줘요. 그때는 배구가 확 와 닿았어요. 그냥 배구가 하고 싶었어요. 아빠도 밀어주셨고. (막상 해보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느꼈죠.(웃음)

아빠 : 처음에는 배구를 쉽게 생각했을 거예요. 잘하는 사람들 것만 보고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겠죠. 생각과 달랐을 텐데도 스스로가 잘 컨트롤했네요. 나도 선수 생활 해봐서 알지만, 멀리서 지켜봐주기만 했네요.

하혜진-하종화(오른쪽).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하혜진-하종화(오른쪽).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하종화의 딸’, ‘하혜진의 아빠’로 산다는 것

기자 : 배구를 딸에게 가르쳤나요?

아빠 : 아빠니까 몇 마디 충고는 해줄 수 있지만 기술적인 것은 전적으로 지도자 분들이 하는 부분이죠. 아빠는 이렇게, 지도자는 저렇게 하라고 하면 딸이 혼동이 올 수 있으니까 크게 나서지 않았어요.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보고 너 스스로 찾아보라고. 지도자의 스타일에 네가 맞춰가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얘기했어요.

기자 : 지도자들도 하종화의 딸을 가르치는 부담이 있었겠죠?

아빠 : 그랬을 수 있죠.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했으면 기분도 안 좋았을 것이고요. 나도 팀을 맡고 있어서 자주 못 갔어요. 혜진이 경기 어쩌다 보면 ‘고생했다, 잘했다 ’고 얘기 해준 그런 기억만 나요.

기자 : 아이들 중 배구는 혜진이만 하나요?

아빠 : 혜진이 하는 거 보고 언니도 한번 해보겠다고 했는데 프로는 포기했어요. 프로까지 갈 실력은 미흡했던 거죠. 대학에 진학해서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4학년이에요. 쌍둥이가 있는데 막내딸도 중학교까지 배구를 했어요. 아들은 중2인데 야구를 합니다. 투수 한다고 해서 따라가 봤었는데 시원찮아요.(웃음) 마운드 올라가면 스트라이크보다 몸에 맞는 볼을 더 많이 던지는 것 같아요.(웃음)

기자 : 배구선수 하혜진이 아니라 ‘하종화의 딸’로 바라보는 시선이 힘겨웠겠죠?

딸 : 어렸을 때는 힘들었어요. 시선이 신경 쓰이다보니 실력도 안 나왔어요. 지금은 무뎌져서인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괜찮아요. 힘들 때에는 같이 배구했던 언니가 힘이 되어줬어요. 아빠는 쉴 수 있는, 나무 그늘 같은 존재였어요.

기자 : 같이 배구 얘기 할 것도 많았겠네요.

딸 : 솔직히 아빠가 내 경기를 보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학교 때는 아빠가 왔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줘서 찾아보면 금방 사라졌어요. 그래서 보시는지도 잘 몰랐어요.

기자 : 아빠는 대학교 때 슈퍼리그를 우승시킨 현역 최고 선수였죠. 반면 혜진 선수는 단계를 밟는 선수에요. 아빠가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는 느낌은 없었나요?

딸 : 선수는 그런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고 얘기해줬어요.

아빠 : 부담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 다해라. 코트에서 노력한 만큼 실력이 나온다. 꼭 최고가 안 되더라도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 가지고 걸어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빠가 국가대표였다고 딸도 그래야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과정에서 자기 발전이 되고.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딸을 보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김천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하종화가 자전거 타는 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김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딸을 보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김천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하종화가 자전거 타는 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김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미안하고 고마운 딸, 간절함 갖고 배구하기를…

기자 : 인터뷰 전에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과 우연히 스쳤는데 얼마만인가요?

아빠 : 김 감독님을 김천 숙소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에요. 혜진이가 학생도 아니고 프로 선수인데 감독님을 만나는 자체가 다른 분들, 다른 선수들이 볼 때 좋은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될 수 있으면 내가 경기장에 안 와주는 것이 지도자도 편할 겁니다. 사실 TV로 배구 보는 것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기자 : 아빠 아닌 지도자 하종화로서 딸 아닌 선수 하혜진을 평가해 주신다면?

아빠 : 기술적으로 수비 리시브 연결 능력이 우선되어야 해요. 배구는 이런 섬세한 부분을 채우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서 무너지면 팀 전체가 무너지죠. 혜진이가 점프력과 공격력은 있는데 아직은 그런 테크닉이 부족해요. 다만 가능성은 없지 않으니,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겠죠. 지도자들이 도와주니까 2%만 채워지면 기회가 생길 것이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자 : 아빠가 하 감독이어서 좋은 점이 뭘까요?

딸 :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아빠가 배구 안 했다면 물어보거나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을 거예요. 지금 아빠가 좋아요.(웃음)

기자 : 프로선수가 된 지금도 배구가 재미있나요?

딸 : 현재는 욕심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재미로 했는데 지금은 (배구 기술을) 빨리 몸에 습득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요.

도로공사 하혜진. 사진제공|도로공사
도로공사 하혜진. 사진제공|도로공사

아빠 : 그런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욕심이 없으면 노력도 안 하게 되죠. 아빠가 배구 선수라서 제약이 있었겠죠. ‘네 아빠가 누군데 이렇게 행동해야 되겠어,’ 이런 소리 안 들으려고 조심스러웠을 거예요. 아빠는 혜진의 동기유발자이자 부담감이었을 겁니다. 그 속에서도 이렇게 커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항상 예뻐요.(웃음)

기자 : 대견한 것 같네요.

아빠 : 본인이 땀 흘렸으니까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성장해서 은퇴할 때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 가졌으면 해요. 이런 자리 덕분에 이야기해줄 수 있어서 좋네요.
기자 : 지도자 아빠를 보며 배구인의 고민도 목격했겠죠?

딸 : ‘아빠도 힘들면 나한테 기대줘’, 그럴 순 없잖아요. 내색 안 하세요. 밖의 일과 집에서의 기분은 구분이 되어 계세요.

아빠 : 밖에 있는 일을 집으로 가져가진 않았어요. 경기 졌다고 집에 가서 사춘기 애처럼 그러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집에 자주 못 들어갔죠. 지도자는 가족과 등지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기자 : 딸한테 미안할 때는 없었나요?

아빠 : 다쳤을 때. 손가락 부러지고 발목 다쳤을 때요. 내가 다쳐본 경험이 있으니 그때의 고통이 내 뇌리를 스쳐요, 소름 돋고 안쓰럽죠. 다른 집 아빠처럼 자주 안아주지 못했으니까 항상 집사람과 딸한테 미안하고 고맙죠.

기자 : 혜진이가 만약 배구선수 남친 데려오면 괜찮나요?

아빠 : 본인이 좋다면 100% OK입니다.

기자 : 혜진 선수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딸 : 지금 목표는 주전이요. 더 큰 목표는 국가대표요. ‘하혜진의 아빠, 하종화’로 불리는 그런 날이 오도록 할게요.(웃음)

하종화-하혜진(오른쪽).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하종화-하혜진(오른쪽).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하종화

▲생년월일 1969년 8월28일
▲진주 동명고~한양대~현대자동차 서비스(1992~2000년, 포지션 레프트)
▲국가대표(1989~1997년)
▲현대캐피탈 코치(2000~2002년)
▲동명고 감독(2003~2011년 5월)
▲현대캐피탈 감독(2011년 5월~2013년 4월)
▲동명고 감독(2014년~2017년)

■ 하혜진

▲생년월일 1996년 9월7일
▲포지션 레프트(키 181㎝)
▲유영초~경애여중~진주 선명여고
▲도로공사(2014년~, 2014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지명)

김천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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