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흉악범은 가려주고 피해자는 버려두고”

  • 입력 2008년 10월 22일 17시 37분


표창원 교수“묻지마 범죄 피해자 구제대책도 ‘묻지마’라면 곤란”

“흉악범들의 이름 석자와 얼굴을 공개해야 합니다.”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명세 등은 어디까지 공개해야할까. 현재 경찰은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얼굴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강력범의 경우 얼굴과 신상명세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은 상대적으로 크게 미흡하다는 것. 피의자보호와 피해자 구제책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의견이다.

범죄 심리학자 표창원(43·사진) 경찰대학교 교수가 22일 피의자의 신상보호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표 교수는 강력범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적극 주장하는 한편, 이번 ‘묻지마 살인’의 경우 사회적 강자들에 대한 불만이 해결책을 찾지 못해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분출구를 찾았다고 진단했다. 또 이 같은 ‘묻지마 살인’이 늘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대해 미국의 예를 들며 사회가 대응책을 마련해 그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영상취재: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이날 경찰은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6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방화·살인 피의자 정모 씨(31·무직)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검정색 야구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애썼다.

표 교수는 흉악 범죄자에 한해 신상 공개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흉악 범죄 혐의자의 신상 공개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익이 충돌합니다. 피의자의 인격권과 공공의 이익이죠. 충돌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것은 각국의 태도에 따라 다르지만, 인권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은 이들의 얼굴을 가려주고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죠. 예방을 위해서도 이런 짓을 저지른 자들은 이렇게 공개된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고, 이 자들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다면 법원 검찰에 알려달라는 겁니다. 그 자가 만약에 행한 범죄를 부인할 경우 증거가 불충분할 수 있고 그의 얼굴이 노출돼야만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국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영국은 경찰에 피의자의 신상을 노출하지 못하게 의무를 부여 하고 있지만 언론에서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마스크를 씌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치 과정에서 범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촬영되면 그대로 보도 되는 겁니다. 경찰과 언론이 각자 역할을 수행하는 게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의 해법이 아닐까요. 반면에 우리는 피의자 신상 공개에 있어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비겁합니다. 인권 보호에 소홀했다는 도덕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스크 씌우고 가려주고 합니다. 경찰은 자기 일만 하면 됩니다. 언론도 피의자의 사진과 이름 석자 확보하게 된다면 자신 있게 보도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유명인은 조그만 일까지도 혐의가 있으면 공개하면서 강력범은 왜 그렇게 소극적인 겁니까.”

우리가 범죄자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 범죄 피해자와 유족들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표 교수는 다른 사례를 들었다.

“가해자는 국가에서 재워주고 교육까지 시켜주지만 피해자는 심리 상담은커녕 기초적인 피해 회복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세 자매 피습사건(잠자던 둔기로 내리쳐 두 딸은 숨지고 막내는 중상)의 아버지는 용의선상에 올라 수사를 받았습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해 임대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세입자들이 끔찍한 집에서 못산다고 다 나가버리고 집도 팔리지 않았지만 국가가 해준 것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부천 초등생 살해 사건의 피해자 삼촌이 한강에서 투신자살했고 유영철 사건의 피해자 동생도 자살을 했겠습니까. 약물중독, 알코올중독, 가족해체 등 추가적인 후유증을 안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는 모든 사회는 각각의 조건들-인구 문화 환경-가 갖춰지면 범죄가 발생한다는 범죄 포화의 법칙을 설명하며 피해자들은 ‘나 또는 우리를 대신해서 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많은 예산을 가해자들에게 쏟아 붓는 만큼 피해자들에게도 실질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사망한 사람은 한도액이 1000만원이고 중장애는 등급별로 600만원 400만원 300만원인데 그 마저도 심사를 받아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범인과 인척 관계에 있거나 기타 사회 상규상 국가가 안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표교수의 주장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은 경찰청 훈령에 따라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사생활과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입장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아 피의자 인권보호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표 교수는 최근 고시원 방화 난동 사건 등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타인을 동료가 아닌 이방인 내지 적으로 보는 경향이 늘었기 때문이죠. 사회가 오직 성취, 경쟁에서의 승리, 더 높은 곳에의 진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거기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을 점점 적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 점이 과거보다 더 사회를 대상으로 한 복수 형태의 범죄를 늘게 합니다.”

그렇다면 피의자들의 사회를 향한 불만이 왜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로 분출 됐을까. 이번 사건 역시 중국 동포 여성들이 주 피해자였다.

“사회가 잘못됐다면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 등이 목표가 돼야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대상들에게 접근할 능력도 없고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 불만 표출을 위해 주변에 있는 약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입니다.”

대개 ‘묻지마 살인’의 경우, 자살 동기와 폭력 성향이 한꺼번에 나타나는데,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까 몇 명 같이 죽자는 식이다. 따라서 미국 조승희 사건이나 90년대 여의도광장 질주 사건처럼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자살하거나 사살되는 형태로 종결된다.

그러나 표 교수는 최근의 ‘묻지마 살인’의 경우 ‘연쇄 살인’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범행에서는 자포자기로 범행을 저지르지만, 붙잡히지 않고 도주에 성공하면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됩니다. ‘자신이 완벽하다 뛰어나다 나만의 삶의 목적을 찾았다’ 이런 태도로 바뀌게 되면 더 위험한 연쇄 살인범이 될 수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런 ‘묻지마 범죄’는 미국의 경우 사회적 노력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표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런 유형의 범죄(다중 살인)가 가정의 해체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발생해 1970년대 전체 살인 사건의 3%, 1990년대 4%를 차지하는 등 늘었지만 사회적으로 이상 성격자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2000년대 감소세를 보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범죄를 ‘길거리 살인마’라고 하는데 2006년 2건, 2007년 8건, 올해는 11건으로 급증세를 보이자 최근 국가와 사회, 학교에서 다각도의 상담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있다.

“우리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 더 엄청난 사례를 목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yjj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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