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인데 외교에도 역량 발휘?…정경두, 외교 현장서 존재감

  • 뉴시스
  • 입력 2020년 3월 14일 1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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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만났던 美의원들, 美정부에 동일 내용 전달
정경두, 지난해 지소미아 논란 때도 한일 가교역
고군분투에도 방위비 협상 타결 가능성은 미지수

정경두 국방장관이 자신의 주종목인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영역에서도 외교관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일본과의 지소미아 갈등 국면에 이어 미국과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국면에서도 깨소금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을 외국에 제시하는 중이다.

정 장관의 외교력은 미국 하원의원들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보낸 방위비 분담금 관련 서한에서 일부 드러났다.

미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비확산 소위원회 아미 베라(Ami Bera) 위원장과 테드 요호(Ted Yoho) 공화당 간사는 11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과 에스퍼 장관에게 보낸 초당적 공개서한에서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다음달 1일까지 타결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 무급휴직 사태와 관련, “역내 미군의 준비태세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한국인 직원 임금이 다른 수단들을 통해 지급되도록 하는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 “새 협정이 타결될 때까지 현행 SMA를 한국인 근로자 임금에 한해서만 연장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이 서한에 담긴 내용은 정경두 장관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두 의원에게 호소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아미 베라 하원 의원과, 테드 요호 의원을 직접 만났다. 당시 정 장관은 이들에게 “방위비분담금 협상 타결 지연으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가 발생해 연합방위태세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장관은 그러면서 “이를 위한 주한미군 자체 운영유지(O&M) 예산 전용이나 방위비 분담금 항목 중 인건비만 우선 타결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제안했고, 이 내용이 두 의원의 서한에 거의 그대로 포함된 것이다.

미 의회의 목소리가 향후 양국 행정부간 막바지 방위비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미국 내 여론에 일부 변화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정 장관의 목소리가 외교 현장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 장관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논란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11월 일본과의 가교 역할을 하며 우리 정부의 조건부 연장을 이끌어냈다.

정 장관은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과 비공개 회동을 수차례 가졌다. 두 사람만 참석한 비공개 만찬도 있었다.

정 장관과 고노 방위상은 태국 방위산업전시회 개막식에서는 취재진에게 노출될 것을 의식한 듯 한국이나 일본의 방산업체 전시관이 아닌 동유럽 업체 전시관 앞에서 대화했다. 일본어가 능숙한 정 장관은 통역 없이 고노 방위상과 얘기를 나눠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정 장관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우리 군 내 대표적인 지일파다. 그는 1995년과 2005년에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는 등 일본통이다. 그런 그가 지소미아 국면에서 한일 양국간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처럼 정 장관이 지소미아 논란에 이어 방위비 협상 국면에서도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우리 외교부와 미 국무부는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위비 협상 결렬에 따라 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당장 다음달부터 무급휴직을 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에서 일자리까지 잃을 경우 한국인 직원들이 겪는 고통은 가중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 장관의 고군분투가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고 평한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방위비 협상을 추진하는 것도 미 행정부고, 미군 기지 운영하는 쪽도 미 행정부다. 의회가 할 수 있는 게 제한돼있다”며 “의회는 행정부에서 보고를 받고 청문회를 여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또 “미국은 훨씬 규모가 크고 확진자를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나라보다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어수선한데 방위비 문제가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있을 수 있을까. 주한미군 문제를 의회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겠나”라고 짚었다.

한국인 직원 무급휴직 사태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김 센터장은 “한동안 한국 근로자 이슈가 묻히면서 근로자들이 2~3주나 한 달 정도는 무급으로 일을 하거나 일시적으로 일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급휴직이 주한미군 주둔에 어느 정도 큰 지장을 줄지는 두고 봐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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