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앓는 엄마 위해 ‘무설탕 빵’을 만들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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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설탕없는 과자공장’ 대표

설탕없는 과자공장’의 간판 제품인 무설탕 저탄수화물 스콘의 반죽을 잘라 들어 보이는 오세정 대표. 그는 “당뇨 때문에 설탕을 먹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달콤한 간식을 안심하고 즐길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얘기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설탕없는 과자공장’의 간판 제품인 무설탕 저탄수화물 스콘의 반죽을 잘라 들어 보이는 오세정 대표. 그는 “당뇨 때문에 설탕을 먹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달콤한 간식을 안심하고 즐길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얘기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밥보다 빵을 즐기는 가족. 당뇨병 환자인 어머니는 매일 빵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맛있게 먹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식빵 4분의 1쪽만으로 빵과 과자에 대한 욕구를 달랜 후 채소로 배를 채웠다. 설탕을 빼고 칼로리 낮은 재료로 과자를 만드는 ‘설탕없는 과자공장’은 딸 오세정 대표(32)가 그런 어머니를 위해 세운 회사다.

“외가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어 중년이 되면 나도 위험할 텐데 빵과 과자를 너무 사랑하니 불안했다. 보람 없이 분주하기만 했던 회사 생활을 멈추고 싶은 마음도 컸다. ‘왜 일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오 대표는 의류업체 마케팅 기획자로 일하던 시절 해외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무설탕 초콜릿을 트렁크 가득 사왔다. ‘어머니처럼 단맛을 그리워하는 당뇨병 환자의 수요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2015년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경기 김포에 창고를 빌려 미국산 무설탕 초콜릿 수입유통업을 시작했다. 1년 만에 쓴 실패를 맛봤다.

“항공편으로 조금씩 들여오다 보니 관세 운송비 홍보비를 떼면 적자였다. 초콜릿 작은 봉지 하나가 8000원대로 비싸니까 판매도 부진했다. 그래도 기죽지 않았다. 무설탕 디저트 시장이 커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패한 까닭이 분명하니까 개선할 방향도 또렷이 보였다.”



오 대표는 틈틈이 제과기술을 배우며 수입한 무설탕 과자의 성분분석표를 꼼꼼히 살폈다. 몸속에 쌓이지 않고 쉽게 배출되는 저칼로리 감미료인 에리트리톨 말티톨 알룰로스 스테비아가 많이 쓰이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작은 제과점을 열어 설탕 대신 저칼로리 감미료를 넣은 과자를 직접 구워 팔았다. 이 두 번째 사업도 2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감미료 수입업체가 없어 식품공학연구소 등에서 비싸게 사야 하는 게 맹점이었다.

무설탕 저탄수화물 스콘. 밀가루 대신 아몬드와 코코넛 가루를 사용해 단백질 함량을 높였다. 설탕없는 과자공장 제공
무설탕 저탄수화물 스콘. 밀가루 대신 아몬드와 코코넛 가루를 사용해 단백질 함량을 높였다. 설탕없는 과자공장 제공
“제품가격 절반이 재료비였다. 팔아도 남는 게 없어 손익분기점만 겨우 넘겼다. 하지만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아당뇨병을 앓는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멀리서 KTX를 타고 와서 과자를 잔뜩 사가더니 맛있게 먹는 아이 사진과 함께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처음으로 큰 뿌듯함을 느꼈다.”

콩, 아몬드, 단호박 가루로 만든 단단파운드. 설탕없는 과자공장 제공
콩, 아몬드, 단호박 가루로 만든 단단파운드. 설탕없는 과자공장 제공
혈당 걱정 덜 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방법이 잘못 설정됐던 것. 2018년 과자 가게를 접은 오 대표는 서울 관악구에 널찍한 ‘과자공장’을 차렸다. 소개서와 제안서를 보낸 온라인 판매처들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서서히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초까지 혼자였던 오 대표는 이제 직원 10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딸을 염려하던 아버지도 당뇨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딸이 만든 과자’를 자랑스럽게 권한다.

설탕없는 과자공장을 대표하는 과자는 밀가루 대신 콩가루 또는 아몬드가루를 사용해 탄수화물을 줄인 ‘무설탕 저탄수화물 스콘’이다(dongA.com에서 조리법을 볼 수 있습니다). 오 대표는 “오븐만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비슷한 조리법을 내건 후발업체들이 생긴 뒤 저칼로리 감미료를 구하기 쉬워졌고 가격도 내려갔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지만 ‘설탕은 나쁜 재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당뇨 때문에 설탕을 먹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단것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 몸 상태를 파악하고 무엇이든 양을 조절하며 먹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재료는 무조건 몸에 좋고 어떤 재료는 무조건 나쁘다’는 시각이 위험하다는 걸, 이 일을 할수록 깨닫게 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무설탕 빵#오세정 대표#설탕없는 과자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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