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우드 스타, 자신과 조국 안의 악마를 대면하다

  • 뉴스1
  • 입력 2020년 1월 3일 1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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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때 일어났다. 갑자기 나는 혼자만의 조용한 구석을 찾아 주저앉아 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 번은 내가 일하던 영화 촬영장에서였다. 우리는 노래 부르는 장면을 찍고 있었고, 배우들은 에너지가 충만했다. 모두 행복해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내 트레일러로 달려가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혀 울기 시작했다.

발리우드(인도 영화계)에서 배우로 경력을 쌓는 동안, 나는 화려한 파티걸, 아름다운 여왕, 슬픔에 잠긴 과부 등 다양한 등장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변화시킨 것은 실생활에서 내가 떠맡아야 할 역할, 즉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내 상태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회복의 길에 있어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나는 2014년부터 우울증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2월 중순이었고 나는 기나긴 하루 일을 마치고 기절해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속이 텅 빈 느낌과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겉에서 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여야 했다.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4편에서 주연을 맡았고, 내 가족은 큰 힘이 됐으며, 나중에 남편이 될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슬퍼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울했다.

나는 항상 지치고 슬펐다. 누군가가 나를 격려하기 위해 행복한 노래를 연주하면 내 기분은 더 나빠질 뿐이었다. 매일 일어나는 것이 엄청난 노력처럼 느껴졌다. 잠만 자고 싶었다. 잠들어 있을 때는 현실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몇 달 동안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묵묵히 괴로워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런 사람이 3억 명 이상이나 된다.

그때 부모님께서 뭄바이로 나를 찾아오셨다. 부모님이 머무시는 동안 나는 애써 괜찮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공항으로 향하기 전 짐을 꾸리자 나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왜 그러니?”라고 물으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어머니는 내게 혹시 일하는 데 문제가 있는지 물으셨다. 내가 남자친구와 사이가 괜찮은지도 물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개를 젓는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잠시 혼자 가만히 생각하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디피카, 내 생각에 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 같구나.”

정신과 의사는 임상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렸다. 나는 너무나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의사로부터 “이것이 당신의 병입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 안도감을 느꼈다. 마침내 누군가가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내가 무슨 증상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회복은 시작됐다.

나 자신을 위해 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억지로 나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의사는 내게 약을 처방했고, 수면, 건강한 식습관, 운동,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등 일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을 추천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훨씬 더 많이 알게 됐다.

회복하면서 나는 내 경험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까? 어머니를 제외하면, 왜 아무도 그 징후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내 감정을 표현하기를 꺼렸을까? 이러한 질문들 때문에 나는 내 상태를 공개하기로 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읽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 팀과 나는 인도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인 힌두스탄 타임스와의 인터뷰와 국영 TV 출연을 통해서 우울증을 알리기로 했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나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일로 영화 배역이나 제품 광고를 잃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저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다. 몇몇 사람은 이것이 홍보성 연기일 것으로 의심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제약회사에서 돈을 받고 이 병에 대해 말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내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도 나는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겪은 일은 많은 사람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행사장, 영화관, 스파 등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정신건강 고통을 나와 나누고자 했다. 마치 옷장 뒤에 숨겨뒀던 우리만 아는 비밀이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게 손을 내밀수록 아직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더 확실히 깨닫게 됐다. 나는 내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사랑하고 웃자’(Live Love Laugh) 재단을 설립했다.

인도에서는 정신건강 문제가 만연하지만, 이를 말하는 것은 대체로 금기시돼 있다. 2017년 WHO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전국에서 약 5700만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 정부가 실시한 2016년 조사에서는 흔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85%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으면서도 정신건강 전문가가 부족하고 13억 인구가 있는 이 나라에서 이것은 극도로 우려되는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살고 사랑하고 웃자’ 재단은 인도에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오해를 줄이고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는 공공 의료 캠페인을 벌이고, 학교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연구를 수행했으며, 의사들과 제휴를 맺고, 시골 지역을 전담하는 정신건강 관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의 주요 목표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아갈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재단 이름을 ‘살고 사랑하고 웃자’라고 지은 이유다. 우울증이 의학적 치료만큼이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단체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자신이 약하고, 인간적이며, 예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회복은 균형 감각을 찾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침내 내 안에서 평화와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솔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아무 죄책감 없이 나 자신을 돌본다.

우울증이 재발할까 염려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우울증을 대면하며 마음과 몸 사이에 더 깊은 연결을 만들고 있다. 만약 또 우울증을 겪는다면, 내가 그것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것을 나는 안다.

디피카 파두콘은 발리우드 배우이며 ‘살고 사랑하고 웃자’ 재단의 설립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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