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불확실성에 휴가도 다 못 쓴 文대통령…영결식 당일 복귀

  • 뉴시스
  • 입력 2019년 10월 31일 17시 07분


코멘트

특별휴가 5일 중 4일만 소진…복귀 후 '태국 방문·APEC 대책 전념'

공들여 준비했던 11월 외교 일정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모친상으로 주어진 특별휴가도 다 못 채우고 청와대로 조기 복귀했다.

문 대통령은 31일 오후 3시30분께 전용헬기편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다. 지난 28일 모친 장례를 위해 자리를 비운지 꼬박 4일만이다. 공무원휴가규정에따라 5일 간의 특별휴가가 보장됐지만 하루 먼저 복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부재 기간 있었던 각종 현안들에 대한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공식업무 복귀는 이튿날부터 이뤄질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고민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내일부터 업무에 복귀해 정상 근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9일 외부 일정 소화 도중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별세 소식을 접한 뒤,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장례 절차에 공을 기울였다. 빈소부터 장례 형태와 절차까지 모든 결정에 관여하며 맏상주 역할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지난주 한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을 보면서 이별을 직감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최대한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뜻과 함께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것을 사전에 주문했다.

빈소를 부산 내 남천성당으로 정한 것도 한 켠에 별도의 업무공간을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결정할 만큼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게 장례 기간 세운 문 대통령의 철칙이었다.

가족·친지 외에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에서 한 발 물러나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국 외교관의 조문을 받은 것도 상대국 예우 차원 외에 정상 외교를 대비하는 국정 운영의 일환으로도 풀이된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조문도 단순 조문보다는 정부와 청와대를 대표해 국정 주요현안에 대한 보고를 듣기 위해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총리는 전날 조문을 마친 뒤 “아프리카 돼지열병, 일본 관계 등 몇 가지를 보고드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달 17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갑작스레 취소됐다. 칠레 정부의 전격 취소 결정에 따라 물밑에서 추진 중이던 각국 정상과의 양자회담 등 외교일정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11월 대통령 일정 전체를 전부 새로 짜야하는 상황”이라며 “대통령 당신이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 업무를 보겠다고 하니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사흘 뒤인 다음달 3일 동남아시아연합(ASEAN)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태국 방문길에 나선다. 2박3일 동안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다.

이번 태국 방문은 11월25일 부산에서 예정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 대한 각국 정상 초청과 연계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절반 안에 아세안 10개국에 대한 양자 방문을 모두 마친 것도 집권 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회의의 성공을 위한 사전 노력에 해당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정부의 ‘신(新) 남방정책’에 대한 비전을 안방을 찾는 각국 정상들에게 제시하고 협력 관계를 확대해 간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태국에서의 다자외교 이후의 외교 일정에 큰 변수가 생겼다. 보름여 남겨둔 상황에서 칠레 정부가 APEC 개최 포기를 선언하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APEC 참석을 전제로 택했던 경유 차원의 멕시코 방문부터 APEC 기간 산티아고로 모이는 주요국 정상들과의 양자 회담을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상회담 일정은 대통령의 최종 판단 없이 외교 당국간 실무자 선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특히 ‘스톡홀름 노딜’ 이후 장기 교착 상황이 우려되는 북미 비핵화 대화에 동력을 위해서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시한 뒤 북측이 재촉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 그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 상황을 풀기 위해서라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레버리지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은 지난 2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한미 간 정상급의 밀도있고 강도 높은 협상을 통해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결론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 자신의 명의로 된 조의문(弔意文)을 전달하면서 관계 개선에 대한 단초가 마련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지난 30일 극비리에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김 위원장의 조의문을 접수한 뒤, 오후 늦게 부산 빈소를 찾아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개인적 인연을 중요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격에 따른 단순한 조의 표명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메신저가 외교안보 라인이 아닌 윤 실장이라는 점에서 다른 긴밀한 메시지가 담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윤 실장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대북특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도 수행하며 김 위원장과 신뢰 관계를 형성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 “남북간에는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는 없었던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