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네로는 정말 폭군이었나… 우리가 몰랐던 진짜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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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정기문 지음/340쪽·1만4800원·책과함께

“과거는 때로 권력에 의해 변형”
다윗-엘리자베스1세-콜럼버스 등 역사적 인물의 숨겨진 진실 추적

“역사가 시작되면서 ‘과거’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자산이자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 역사가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 거창한 머리말에 떨지 말자. 이 책은 에드워드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아니다. 꽤나 긴 제목이 엔간히 말해준다. 그래, 방바닥에 드러누워 배 두드리며 봐도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한때 유행했던 ‘오락물’에 가까운 흥미 위주 역사서냐면 고건 또 아니다. 물론 저자는 지난해 전작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에 이어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라 겸양한다. 하지만 군산대 사학과 교수인 그의 글엔 ‘뭔가’ 있다. 편안한 웃음 뒤춤에 잘 벼린 칼이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

자, 일단 이 근거 없는 음모론을 이어가련다. ‘역사를…’은 역사 속 유명인 7명을 다룬다. 골리앗과 싸운 다윗, 로마 황제 네로,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 등 대체로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실제’ 그들은 세상에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쓰윽 포석을 깐다. 오호라. 감춰진 얘기를 까발리는 일만큼 신나는 게 어디 있겠나.

이를테면, 네로는 정말 폭군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런 오명은 억울한 면이 많다. 그가 핏줄도 정적이면 잔인하게 죽인 건 맞다. 한데 ‘왕좌의 게임’에서 그건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네로는 평민이 사랑했던 황제였다. 사후에도 대중에 영합해 그의 후예를 자처한 정치인이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네로가 ‘가진 자’에게 적이었단 점이다. 귀족은 세금 부담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통의 붕괴를 두려워했다. 당연히 그들이 주도한 역사서가 네로에게 우호적일 리 없었다. 게다가 영화로도 유명한 19세기 소설 ‘쿠오바디스’가 최악의 폭군으로 묘사한 게 결정적으로 머리에 박혀버렸다.

저자가 ‘선택한’ 여타 인물도 마찬가지다. 현재 찬사를 받든 비난을 받든 다 뒤집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그게 남성이건 주류이건 강대국이건, ‘힘’을 지닌 세력에 따라 역사는 일그러진다. 하나 더. 이 굴곡은 남 일이기만 할까. 책 행간엔 너무나 많은 거울이 숨어 있다. 어떤 문장은 21세기 대한민국에 너무 맞춤이라 눈이 동그래진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를…’은 재미가 우선이다. 크기도 앙증맞고 띠지 같은 꾸밈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겨울밤 구들방에서 들려주신 할머니의 옛얘기엔 곱씹을 통찰과 교훈이 배어있다. 그런 뜻에서 엉뚱하지만, 저자가 전작에서 쓴 한 글귀를 인용한다.

“재미난 이야기의 기준은 무엇일까? …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영양가’가 있어야 한다. … 우리의 인식 구조에 자리 잡고 있는 허위의식을 밝혀주는 이야기가 재밌을 때가 많다.” 국내 ‘역사’ 요리사가 차린 서양식 별미를 흐뭇하게 즐겨보시길.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정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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