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권력을 가진 ‘선택자’ 큐레이터와 현대미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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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셔니즘/데이비드 볼저 지음·이홍관 옮김/228쪽·1만5000원·연암서가

4년 전, 아트바젤이 열리고 있던 미국 마이애미 해변에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났다. 비행기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여 내 말을 들어 주소서’라고 적힌 현수막을 매달고 허공을 날았다. 한 캐나다 출신 예술가가 이제는 권력이 된 스타 큐레이터 오브리스트를 떠올리며 느끼는 좌절, 경외, 취약성을 유쾌하게 표현한 퍼포먼스였다.

‘큐레이셔니즘’이란 창조주의(Creationism)를 본떠 저자가 만들어 낸 단어다. 이 책은 큐레이터의 어원, 역사를 소개하고 이에 따라 전환돼 온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탐색한다. 큐레이터는 본래 ‘치료사’, ‘관리자’였으나 점차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결국엔 좋은 ‘선택’이 곧 예술 행위에 버금가는 ‘창조’라고 여기게 됐다.

‘모던페인터’, ‘아트포럼닷컴’ 등 유수 매체의 비평가이자 ‘커네디언아트’지의 부편집자인 저자는 큐레이터의 역할과 의미, 노동 환경 등을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큐레이팅은 사실 개인의 ‘불안’에서 비롯된 충동이다. ‘뭔가 값어치가 있음을 확인하고픈’ 심리로 인해 ‘한시도 쉬지 않는 관심 구걸하기와 보여주기’가 만연해진다.

예술 관련 학위를 소지하고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인턴,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젊은 여성을 뜻하는 은어 ‘갤러리나(Gallerina)’를 소개한 대목도 흥미롭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이면에는 무보수 노동도 많다고 꼬집는다.

결론은 무관심하게 관조하고, 성찰하고, 사색하며, 선택할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본질은 대상에 대한 돌봄, 나아가 진실한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큐레이셔니즘#데이비드 볼저#큐레이터#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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