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배구협회는 어쩌다 ‘부끄러움’이 되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11일 05시 30분


대한배구협회는 최근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 구설에 휘말려 있다. 난파선이 된 대한배구협회는 과연 어떻게 수습될 수 있을까. 오한남(왼쪽)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이 취임한 뒤 지난달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앞둔 여자배구대표팀을 격려하는 모습. 스포츠동아 DB
대한배구협회는 최근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 구설에 휘말려 있다. 난파선이 된 대한배구협회는 과연 어떻게 수습될 수 있을까. 오한남(왼쪽)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이 취임한 뒤 지난달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앞둔 여자배구대표팀을 격려하는 모습. 스포츠동아 DB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대외적으로 한국배구를 대표하는 대한배구협회를 가정에 비유하면 ‘콩가루 집안’이다.

김치찌개 회식, 전임회장 탄핵, 여자국가대표 선수들의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 이동, 대표팀 차출을 둘러싼 김연경 발언 등,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협회는 시스템과 맨 파워가 부재한 조직임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쯤 되면 협회가 친 사고들은 우연, 불운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할 때다. 왜 협회는 이 정도로 무능할까?

● 돈을 엉뚱하게 쓴 조직, 돈을 못 버는 조직

배구계 인사 A의 말이다. “오한남 신임 회장도 딱하다. 2억원의 사재를 내놓고도 욕만 먹는다. 협회는 회장이 몇 억 출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협회의 권위를 갉아먹은 찌질한 사태들의 근원은 결국 돈 문제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인데 협회는 구조적으로 궁색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협회가 2009년 강남에 약 180억원을 들여 건물을 샀을 때 불행은 잉태됐다. 구입 시점부터 ‘시세보다 비싸게 샀다’는 의혹이 일었다. 나중에 협회 수뇌부는 수사까지 받았다. 결과적으로도 이 재테크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가치가 떨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가상각이 발생했다. 임대수입은 이자비용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협회가 기대했던 수익창출은 물 건너갔고, 기회비용은 치명적이었다.

현재 협회 집행부는 이 건물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협회 인사 B는 “매입가격만큼 받고 사겠다는 측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일이 아주 잘 풀려도 약 110억원의 은행 빚을 갚으면 70억원의 배구발전기금이 협회로 들어온다. 그러나 배구계 인사 C는 “이 돈은 협회가 필요하다고 지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현재 협회를 움직인다는 숨은 실세들의 신뢰치를 감안할 때, 함부로 이 돈을 건드릴 명분은 더 떨어진다.

결국 협회는 대표팀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대표팀을 위해 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야 일이 해결된다. 기획과 마케팅에 사활을 걸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KOVO(한국배구연맹)와의 협업도 제안해야 한다. 일각의 지적처럼 ‘방송중계권 협상을 KOVO가 대행해 준적도 있고, 한국에서 A매치를 열어도 공짜표가 돌아다니는’ 형편으로는 그 무엇도 안 된다.

그러나 협회는 재정이 비교적 탄탄한 KOVO와의 갈등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식의 ‘북한식 협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배구계를 분열시키고,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능력도 안 되면서 대표팀 관할이라는 기득권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여론의 지지도 바닥이다. 판세를 읽는 감각에서 협회는 다른 세상 사람들 같다.

26일 홍성진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대표팀이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라운드 출전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체코 오스트라바 출국을 했다. 오한남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26일 홍성진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대표팀이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라운드 출전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체코 오스트라바 출국을 했다. 오한남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일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오 회장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문고리 4인방’, ‘올드보이들의 귀환’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협회를 움직이는 실체가 따로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다. 가뜩이나 협회는 사무국이 무력하다는 평이다. 연령대도 높고, 숫자도 부족하니 활동적이지 못하다. 구조적으로 협회가 이사회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무국 실무직원들에게 힘이 실리지 않고, 일할 역량도 떨어진다.

이사회도 배구인이 주류이다 보니 홍보, 마케팅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안남수 전 현대캐피탈 단장을 기획이사로 영입한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다. ‘비선 라인이 협회를 좌지우지 한다’는 의혹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이선구 전 GS칼텍스 감독을 수석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안 이사 등 외부인사가 협회의 견고한 관료주의를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해 배구계는 우려를 표시한다.

●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참을 수 없는 태극마크의 무거움

현역 감독 C는 “협회가 국제대회의 경중을 판단해서 대표선수 엔트리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체계가 있었다면 김연경이 이재영을 저격한 듯한 발언도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협회의 일방통행식 ‘애국심 휘두르기’에 구단들의 스트레스도 임계점에 달했다. 프리에이전트(FA) 선수를 영입해놓고도, 훈련을 하루도 못 시켜본 팀도 있다. 그러나 ‘대표팀이 부르는데 못 온다고 할 수 있느냐’는 명분 앞에서 구단들은 말을 못할 뿐이다. 고액연봉을 지급하는 곳은 이쪽인데, 정작 선수는 다른 쪽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일상화되고 있다. 대표팀 차출을 둘러싼 잡음이 일면, 내상을 입는 이는 선수다. 이는 곧 한국배구의 자해이자 손실이다.

이제 ‘협회가 배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꺼낼 지경에 이르렀다. 자금과 인재, 시스템이 모두 부재한 협회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넘길 상황이 아니다. 협회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면 어떻게 내려놓을지를 성찰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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