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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배우 하성광 “등이 듬직한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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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배우 하성광 “등이 듬직한 선배가 되고 싶다”

심규선기자 입력 2017-03-29 16:21수정 2017-03-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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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성광을 인터뷰하며 매우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하다는 말 속에는 착한 것 같다는 인상도 들어간다. 그는 ‘조씨고아’를 통해 배우로서 확실한 위치를 굳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폼 잡지 말고 편안한 연기로 앞으로도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써도 되냐고 물었다.

써도 된다고 답했다.

그의 러브 스토리와 결혼에 대해….


“전남 진도에서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했으나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답이 연극이었고 무작정 상경했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던 중 장애인극단과 공연(共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원래 주인공 여자와 헤어지는 역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와 결혼하는 역이 출연을 못하게 되면서 내가 대신 그 역을 맡게 됐다. 그리고 극중에서처럼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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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세살 연상이었다.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처음에는 거부했다. 세속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먹고 살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사는 방법과 재간을 몰라서였다.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문예진흥원 공연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운다(그는 나중에 우석대를 졸업했다). 그에게도 결혼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결혼 19년차인 그는 요즘 행복하다. 고1 딸과 중3 아들은 ‘다행스럽게도’ 연극배우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고 자랑이다. 아직도 ‘촌놈’ 냄새가 슬쩍 풍기는 ‘그’는 배우 하성광(47)이다. 3월 27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댓바람에 물어봤다. “영화 출연도 꽤 하는데 대부분 단역이다. 생활비 때문인가.” 그가 출연한 12편의 영화 중 단역이 9번, 조연이 2번, 주연이 1번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렇다.” 그러면서 “비록 선택의 폭은 작지만 모든 영화에 다 나가는 것은 아니고, 어떤 영화인지, 무엇을 얘기하는 지는 보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그가 한때 몸담고 있었던 극단 골목길(대표 박근형)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공한 동료들을 언급한 대목이 있어서였다. 동료란 박해일, 윤제문, 엄효섭, 고수희 등이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게 전혀 도움이 안됐다. 연극은 영화와 다르다고 정리했다. 그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고, 인터뷰도 하고 있는 하성광이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말하는 그에게서 ‘관조(觀照)’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영화에 출연한다고 해서 뜨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일로서 만나길 바랄 뿐이다. 많이 떴다가 몇 년 후에 사라지는 사람도 꽤 있다. 나는 잔걸음이라도 꾸준히 걷고 싶다.”

물론 그가 영화에 대해 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보다 연극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연극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내 예상을 빗나갔다.

“없다. 시간 안배가 가장 중요하다. 겹치기 출연은 안 되니까 먼저 들어온 것을 선택한다. 원래부터 선택을 해야 할 만큼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선택기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는 “극단이 관객을 어떻게 보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지는 본다”고 했다. “돈이 따라오는 것이야 좋지만,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 연극을 선택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조씨고아(趙氏孤兒),복수의 씨앗’이라는 작품을 언급할 때가 된 것 같다. 국립극단이 만든 이 연극에서 그는 주인공인 ‘정영’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이까짓 게 무어라고!” ‘조씨고아’에서 주인공 정영을 연기하는 하성광이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조씨고아라고 속여 신고하고,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본 뒤 조씨고아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다. 이 후 정영은 20년간 외로이 복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필부 정영이 극의 중심인물로 바뀌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단 제공
기원전 6세기경 춘추시대 진(晉)나라에서 벌어진 권력다툼으로 조씨 가문 사람 300명이 죽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데, 단 한명의 갓난아기가 살아남아 20년 후에 원수이자 양아버지에게 복수를 한다는 게 이 연극의 줄거리다. 12세기 원나라 때 기군상이라는 사람이 ‘조씨고아’라는 이름으로 잡극(원대잡극)을 썼고, 이것을 고선웅 연출이 각색·연출했다. 정영은 조씨 집안의 문객으로 평범한 의원(醫員)이었지만 조씨고아를 살려내기 위한 눈속임으로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도록 만드는 비정한 아버지이자, 20년 간 복수의 칼을 갈다가 조씨고아에게 진실을 알리고 복수를 하게 만드는 집념의 인물로 그려진다.

이 연극은 2015년 11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처음 공연됐는데 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그해 제52회 동아연극상 대상, 연출상, 연기상, 시청각디자인상을, 제8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휩쓰는 등 상복까지 따라왔다. 두 상의 연기상을 받은 배우가 바로 하성광이다.

그러니 조씨고아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주변에서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제 됐다’라는 말도 한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배우가 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별반 바뀌었거나 변한 게 없다. 자신감이나 프라이드가 높아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그것도 아니다.”

‘조씨고아’는 올해 초 재공연됐다(1월 18일~2월 1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첫 공연은 그냥 해야 하니까 했는데, 재공연은 관심이 커지고, ‘하성광이 뭐길래’ 하는 관객까지 만족시켜야 해서 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두 번째 공연이어서)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결과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하성광이 뭐길래’라는 것은 “저렇게 좋은 배우가 여태껏 어디에 있었나”라는, 그에게는 최고의 찬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재공연을 관람했을 때 2막에서 하성광의 연기는 밖으로 마음껏 발산을 하지 않고, 왠지 감정을 눌러서 표현하는 느낌을 받았다. “절제를 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1막과 2막 사이에는 20년이 흘렀다. 정영의 아픔을 표현할 때 전부 내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고통도 마음속에서 농익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100%를 다 까발려 보여주기보다는 70%나 75%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1막은 밖으로 나오는 에너지가 많다면, 2막은 눙쳐서 끌어안는 에너지가 많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 말을 복수를 하기까지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고, 착하면서도 모질고, 어리숙하면서도 용의주도했으며, 복수에 성공한 후에는 안도하면서도 허무한 정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좋은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800년 전에 쓴 2500년 전의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 의문은 고선웅 연출가를 인터뷰할 때도 가졌던 것으로 그 때는 복수에 재미를 버무렸다는 기술적인 측면과 복수를 한다고 반드시 후련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을 받아들이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하성광을 만나면서 또다시 같은 의문을 갖게 됐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씨고아’를 복수가 아닌 다른 키워드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해석이야 관객 마음 아닌가. 그는 말했다.

“‘조씨고아’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복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자식과 아내까지도 죽여 가며 복수를 선택한 정영이, 그 이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게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복수보다 오히려 의리 쪽에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의기(義氣)를 뜻하는 협(俠)의 눈으로 볼 수도 있으며, ‘협’의 화신이 바로 정영 아니겠는가. 21세기에서 복수는 낯설지 모르지만 의로움은 아직도 유효하고, 그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면 대박도 이해가 간다.

마침 ‘조씨고아’가 복수를 하고 140여년이 흐른 뒤 같은 진나라에서 중국 최초의 협객 칭호를 받는 예양(豫讓)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예양은 자기가 모시던 주군 지백(智伯)이 조양자(趙襄子)라는 인물을 치려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조양자를 습격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붙잡혀 자결한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조씨고아’ 2막에서 정영이 얼굴과 머리에 흰 분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20년이 지나 복수에 나설 때다. 원작에는 없는데 고선웅 연출이 넣었다고 한다. 그 의미를 묻는 사람이 많은데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점과 복수를 앞둔 전사(戰士)의 각오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성광은 각오의 의미가 크다고 봤다. 그런데 이 장면도 묘하게 예양이라는 인물과 겹친다. 예양은 첫 번째 암살이 실패하자 두 번째 암살을 준비하면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온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달라지게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칠신탄탄(漆身呑炭)이다.

대세 연출가 고선웅은 이 역을 왜 그에게 맡겼을까. 하성광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고 연출을 만난 것은 2010년 ‘인어도시’에 출연했을 때다. ‘인어도시’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호스피스 병동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오가는 작품이다. 그 이후 두 사람은 같이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하성광은 ‘인어공주’에서 고 연출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 고 연출이 이런 저런 코칭을 했지만, 연기에 내가 입히고 싶은 색깔을 더 많이 입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인어도시’를 통해 자기 생각대로 연기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연출의 말을 따르자고 다짐했다.”

출연자들이 모여 대사를 읽어보는 첫 리딩 때 하성광은 불안했다. 그런데 고 연출은 그에게 “됐네” 하고 신뢰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래서 고 연출을 그냥 따르자고 한 것은 아니고, 연출가들의 지시를 시간이 흘러 이해하게 되는 학습효과의 결과로 보인다. 고 연출이 그에게 직접 뭐라고 한 적은 없는 듯한데, 고 연출은 “하성광은 정말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배우”라고 평했다.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신뢰가 ‘조씨고아’의 성공을 견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씨고아’에 출연했던 팀은 ‘의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원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드문 사례라고 한다(아전인수 같은 해석이지만, ‘의리회’라는 이름이 ‘조씨고아’를 ‘협’의 시각으로 보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것처럼 들린다).

2014년 9월에 공연한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연극만발-남산에서 길을 잃다’의 홍보 포스터. 오른쪽은 고수희 씨. 이 연극은 어려서부터 여자 옷 만들기를 즐겼으나 반란군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신라 혜공왕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와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비틀었다. 하성광으로서는 국립극단과 인연을 맺게 되는 첫 작품으로 이후 ‘조씨고아’ ‘야키니쿠 드래곤’에 출연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하성광 제공
그는 지난해 3월에도 좋은 역을 맡아 일본 신국립극장에 서는 기회를 얻었다.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 씨의 ‘야키니쿠 드래곤’에 출연한 것이다. 한일합작인 이 연극은 국내에서도 2008년 초연, 2011년 앙코르 공연을 하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하기야 정의신표 연극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일본 관서지방의 곱창집 주인 김용길의 ‘용’자가 ‘龍’(드래곤)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 하성광은 주인공 김용길을 연기했다.

정의신 씨의 작품을 관통하는 시선은 ‘경계인’인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면서도 가족애, 용서, 배려, 희망 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종 재일동포 작가의 작품과 등장인물을 우리의 잣대로 거칠게 재단하려는 사람이 있다. 말릴 수야 없지만, 옳지도 않다. 돈 싸들고 제 발로 미국으로 간 사람이 시민권을 받으면 축하하고, 못난 조국을 만나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정착하게 된 재일동포가 귀화를 하면 비난하는 식의 잣대로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했던 삶과 이방인의 외로움, 미래의 불안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김용길이라는 인물은 태평양전쟁에서 왼팔을 잃은 재일동포다. 그는 재일동포의 정서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중하고, 묵직했고, 어려웠다.”

동시에 “‘조씨고아’는 성공할지 안할 지도 모르고 했는데, ‘야키니쿠 드래곤’은 이미 셋업이 된 작품이다. 그런 작품에 출연을 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출연을 제안한 박현숙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다”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에게도 아픈 기억이 꽤 많다. 물론 연기를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다. 2005년 김아라 연출의 ‘덫-햄릿에 대한 명상’이 그랬고, 2006년 기국서 연출의 ‘리어왕’은 최악이었다. 그는 리어왕의 장남인 에드거 역을 맡았는데 연기를 못한다고 심하게 욕을 먹었다. 욕먹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왜 욕을 먹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는 말은 들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씨고아’의 2막에서처럼 ‘눙쳐서 하는’ ‘절제된’ 연기를 원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에드거 역으로 그해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것이다. “연기는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나보고 연기를 계속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런 고민에 빠지게 만든 연극이 바로 리어왕이다.”

연출과 배우는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는 최대한 연출의 의사를 수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은 아니다. 연출이 문제 제기를 하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다른 배우와의 앙상블을 깬다면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그 때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극 전체의 문제가 된다. 그럴 때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옳은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심사가 복잡하지만, 그는 ‘리어왕’에 애착이 있다. 50대 후반이 되면 리어왕 역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50대 후반이라고 못 박는 걸 보면, 연륜에서 오는 완숙미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는 ‘진짜 악역’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대개 이런 희망 속에는 그간의 평가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동하는데, 그도 혹시 ‘사람이 너무 순하다’는 말을 들어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나중에 그는 “친한 친구들은 나를 ‘성깔 있는 애’라고 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는 아직도 영화를 찍는 카메라 앞에 서면 낯설고, 무대 위에 서면 편하다고 했다. 카메라 앞의 연기는 틀리면 다시 찍을 수 있지만, 무대 연기는 한번으로 끝이다. 그러니 그 반대가 돼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연극은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니까 그래도 괜찮다. 영화는 연습도 별로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데, 연기의 질은 연극만큼 올려야 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단역이 더 어렵다. 어떻게 나올지, 무슨 인물인지도 모르고 연기를 할 때가 있어서다.”

하성광은 지난해 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2인극 ‘고모를 찾습니다’에 출연했다. 캐나다 극작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 상대역은 탤런트 정영숙이었다. 그는 이 연극에서 연락이 끊긴지 30년이나 되는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죽어간다”는 편지를 받고 700번이나 읽은 뒤 고모를 찾아가는 성격장애인 켐프 역을 맡았다. 예술의전당 제공
그가 요즘 연극판을 어떻게 생각하나.

“극단도, 배우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자본이 안 들어갈 수가 없으니 경제적 능력이 있는 극단과 그렇지 못한 극단이 갈라지고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레벨 이상의 극장에 서지 못하면 3류 배우 취급을 한다. 극장의 크기는 연극의 본질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타개책도 마땅찮다. 이런 틈새를 이용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아류 연극이 많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선배의 등’을 얘기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선배의 등’은 안쓰러우면서도 듬직해 보였다. 이제는 그런 선배가 드물다. 내가 그런 선배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요즘 나는 무대 위에서는 ‘잘 나가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무대를 내려가면 ‘질문을 받는 배우’다. 후배들이 카톡이나 메신저 등으로 연기 등에 관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해 온다. 아, 이렇게까지 물어오는 후배들에게는 뭔가 도움을 주는 것도 선배의 역할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을까.

“크게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러나 후회스러운 적은 있었다. 연극이 잘 안 풀릴 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과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어떤 배우를 지향하고 있는가. 그는 배우가 아니라 광대로 불리길 원했다. “배우는 왠지 성공한 사람 같고, 뭔가를 이룬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광대는 서민적인데다 아직은 덜 익은 상태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다.”

다시 생활과 가족으로 돌아갔다.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늘 그만그만하다. 한 해에 2,3개 작품을 하는데 애들 기르는 것이 좀 힘들긴 하다. 내가 가족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나를 돌본다. 검소하게 살아준다는 뜻이다. 결혼 전에는 두렵다고 했는데 지금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가족이 있으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혹시 아이들이 배우가 되겠다고 한다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도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말리지도 않겠다.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니, 본인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는 5월에 김재엽이 쓰고 연출하는 ‘생각은 자유’(5월 23일~6월 17일, 두산아트센터)에 출연한다. 두산인문극장은 올 주제를 ‘갈등’으로 잡았는데 이 신작은 ‘갈등 시리즈’의 일환이다. 김재엽이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생활하며 경험한 일들을 풀어놓는다. 그가 쓴 일기와 창작 노트, 현지 인터뷰 등을 이용해 세계시민, 이주민, 난민의 시각으로 한국과 베를린의 예술과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두산아트센터를 소개하는 2017년 소책자에서). ‘조씨고아’와 ‘야키니쿠 드래곤’의 환호를 뒤로 하고 하성광이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심규선 고문
그를 인터뷰하며 느낀 것은 한 마디로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함으로써 편안함을 얻는 것 같다. 실제로 그는 “편안하기만 해도 행복하다.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역을 맡아 어떤 성취를 이룰지는 점치기 어렵다. 다만, 편안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그런 배우로 계속 있어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가 출연했던 연극은 다음과 같다. ‘관객모독’ ‘70분간의 연애’ ‘덫-햄릿에 대한 명상’ ‘리어왕’ ‘용산, 의자들’ ‘인어도시’ ‘이형사님 수사법’ ‘풍찬노숙’ ‘기름고래의 실종’ ‘농담’ ‘배수의 고도(背水의 孤島)’ ‘흙의 정거장’ ‘삼국유사 연극만발-남산에서 길을 잃다’ ‘더 파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야키니쿠 드래곤’ ‘고모를 찾습니다’)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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