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본 대신 자유를 택한 뉴욕의 지하도시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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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인간들/제니퍼 토스 지음·정해영 옮김/392쪽·1만6000원·메멘토

벽에 그려진 낙서같은 그림인 그라피티가 있는 미국 뉴욕의 버려진 지하철역. 뉴욕의 일부 ‘두더지 인간’은 생존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활동도 한다. 메멘토 제공
벽에 그려진 낙서같은 그림인 그라피티가 있는 미국 뉴욕의 버려진 지하철역. 뉴욕의 일부 ‘두더지 인간’은 생존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활동도 한다. 메멘토 제공
뉴욕 그랜드센트럴 역 지하 7층 깊이에 있는 빈 터널. 세빌 윌리엄스는 이곳에서 200여 명과 함께 산다. 31세의 윌리엄스는 마약거래 혐의 등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한 시간을 빼면 12년간 지하에서 살았다. 이들 외에도 이른바 ‘두더지 인간’으로 불리는 사람 6000여 명이 뉴욕 지하의 빈 터널이나 동굴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마약, 알코올의존증, 가정 파괴 등 다양한 이유로 지상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하로 내려와 살고 있다. 뉴욕에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는 최빈곤층이다.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욕지부의 견습기자였던 저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두더지 인간’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생활공간을 찾아 취재했다. 이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르포 형식으로 연재했으며 1993년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르포를 기초로 하지만 극화 암시 과장 등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고 취재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 노숙인 세계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후 지하 노숙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나 취재에 있어 ‘고전’으로 여겨진다.

두더지 인간들의 지하세계는 대개 악취와 오물이 넘쳐나는 비루한 곳이다. 심지어 지하 터널을 다니는 쥐를 잡아먹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랜드센트럴 역 지하에 200명으로 구성된 ‘J.C 공동체’는 마약과 술을 금지하고 시장 간호사 보급책 교사 등을 두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계급과 인종 차별이 없고 자본주의적 경쟁보단 공존과 분배의 대안적 삶을 택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책에서 ‘두더지 인간’들이 자본주의적 삶을 해체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분석에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들을 두더지처럼 얕보지 않고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돌봐야 한다는 지적에는 100% 공감하게 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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