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 이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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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쟁의 다룬 영화 ‘카트’ 연출한 부지영 감독

영화 ‘카트’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은 미소가 근사했다. 작은 체구에도 단단한 심지가 묻어난달까. 그는 “다음 작품은 좀 더 내밀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서 출발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카트’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은 미소가 근사했다. 작은 체구에도 단단한 심지가 묻어난달까. 그는 “다음 작품은 좀 더 내밀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서 출발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3일 개봉하는 영화 ‘카트’는 처음엔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일단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파업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에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도경수(디오)의 출연이 10대들에게 화제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카트 야외상영관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카트’는 단순히 사회 고발이나 팬덤의 측면에서만 고려될 작품이 아니다. 영화 내내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건 바로 매일 마주치는 이웃, 아니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부지영 감독(43)도 “이 땅에서 보편적 정서를 갖고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손님 직원 할 것 없이 누구나 돌려쓰니 모두의 손때가 묻는 대형마트의 카트처럼.

영화 ‘카트’는 파업 현장의 격렬한 충돌보단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무게를 뒀다. 명필름 제공
영화 ‘카트’는 파업 현장의 격렬한 충돌보단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무게를 뒀다. 명필름 제공
―주로 다큐멘터리가 다뤘던 파업이란 소재를 극영화로 만들었다.

“육하원칙 관점에서 보자면 ‘무엇을’보다 ‘누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대중은 수많은 파업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한다. 하지만 그건 정보로서 사건만 다룰 뿐이다. 거기엔 다양하게 관련된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들의 사정이나 속내가 뭔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 파업 참가자들은 대다수가 평범한 가정주부다. 우리와 똑같이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엄마들이다. 그런 인물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들려주고 싶었다.”

―실제 현장보단 영화가 순하던데…. 집회에서 민중가요 대신 트로트를 부르더라.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하려 했다. 마트 여성 노동자들은 평소 자기 목소리도 낼 줄 모르는 캐릭터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 처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했다. 영화를 전·후반부로 나누면, 주로 쓴 카메라 렌즈가 달랐다. 앞쪽엔 사물을 넓게 잡는 광각렌즈를 많이 썼는데, 파업 이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부각시켰다. 나중엔 클로즈업에 용이한 망원렌즈로 표정에 담긴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트로트는 노동법도 잘 몰랐던 아줌마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동에 나섰음을 부각시키는 장치였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배우들의 공이 크다. 고교생 아들 태영(도경수)의 엄마 선희(염정아)부터 싱글맘(문정희), 할머니 청소원 순례(김영애), 20대 미진(천우희)까지 모두 훌륭했다. 스타들인데도 촬영이 진행될수록 무리에 녹아들더라. 염정아가 아닌 그냥 선희로 보였다. 천우희는 촬영 전엔 출연작 ‘한공주’를 못 봤다. 그냥 ‘얘, 왜 이렇게 연기 잘해’ 했는데, 작품 보고 ‘이렇게 존재감 큰 배우를 막 대했구나’ 했다, 하하. 도경수는 화려한 무대 모습과 달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울 줄 알더라.”

―영화를 보다 보면 누구도 비난하기가 어렵다.

“맞다. 이 작품엔 악인이 없다. 파업에 반대하는 직원들도 나름 사정이 있다. 위쪽 지시로 할 수 없이 나서는 이도 있을 테고. 파업 현장에 투입된 공권력을 무표정하게 그린 것도 그래서였다. 명령을 따랐을 뿐, 스스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그러는 게 아니잖나. 파업은 사회적 문제다.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해결점을 찾아야지, 개개인의 잘못으로 볼 수 없다.”

―선희와 태영처럼 처음엔 부딪치다 나중에 화합하는 관계가 많더라.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게 바로 소통이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고, 회사 동료라고 서로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방을 이해하려 귀 기울이고, 그 처지를 공감할 때 비로소 진짜 유대가 형성된다. 사춘기 아들은 엄마가 파업하며 가정에 소홀한 것 같아 서운하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로 사회를 겪으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마트 직원이 파업하면 손님은 당연히 불편해서 싫어한다.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을까.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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