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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현대예술 위선에 날리는 건축평론가의 통쾌한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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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현대예술 위선에 날리는 건축평론가의 통쾌한 펀치

손택균기자 입력 2014-11-08 03:00수정 2014-1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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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디자인/데얀 수직 지음·이재경 옮김/640쪽·1만6000원·홍시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해 2007년 완공한 영국 BBC 스코틀랜드 지사 내부. 저자는 “공간 덩어리의 경이로운 폭포”라고 평했다. 홍시 제공
부메랑으로 돌아올 이야기지만, 디자인을 주제로 쓴 책을 읽다가 책 디자인의 어색함이 눈에 띄면 난감해진다. 이 책은 그 부분에서 좀 미묘하다. 62세의 저자는 베테랑 건축평론가로 200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냈다. 2006년부터 영국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을 맡고 있다. 디자인뮤지엄이 매년 상반기 여는 ‘올해의 디자인’전은 세계 최신 디자인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다.

그런 이가 쓴 책의 디자인이 이렇게 밋밋할 수가. 원제는 ‘B Is For Bauhaus(바우하우스의 B)’다. 아마존에서 확인한 원서 표지와 각 장 첫 페이지 디자인은 한국어판과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첫 장 ‘Authentic(진본성)의 A’에서 글쓴이는 “글꼴은 억양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다”며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선거캠프가 슬로건에 사용한 ‘고담볼드체’의 전략적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원서 디자인은 글의 맥락을 체현했다. 출판사 측은 “디자인도 번역의 대상이며 제목을 포함한 모든 변화에 대해 저자의 확인과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했다. 국내 출판시장 사정에 어두운 주관적 취향 탓이겠으나, 끝까지 읽고 나니 그림 한 장 없이 텍스트와 글꼴디자인으로만 엮었다는 영문판이 궁금해진다.

글은 시종 섹시하다. 시원스럽게 거침없이 움직이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007 제임스 본드의 액션을 닮았다. 번역도 구성지다.

“현대미술계의 슈퍼스타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은 브랜딩(branding)이라는 이름의 연금술 또는 ‘뱀 장수 상술’과 별 차이 없다. 그는 스스로 알록달록한 땡땡이 무늬에 대한 전매특허를 가졌다고 믿은 나머지 한 영국 항공사 비행기의 땡땡이 무늬 외장에 소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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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신랄함이다. ‘예술을 마술과 종교의 신성한 혼종으로 신성시하면서도 미술품의 시장성에 환호하고, 새로운 종교(아티스트)의 개별 작품 수준을 논하는 행위를 신앙 의심의 불경처럼 대하는’ 현대 예술의 위선을 자근자근 씹어댄다. 그러면서도 어떤 대상의 가치를 심판하거나 정사(正邪)를 갈라짓는 단정은 절묘하게 피해간다.

7년 전 디자인사전 형식으로 기획한 책이다. “이제 사전 아무도 안 사요”라는 출판사의 조언을 듣고 구성을 바꿨다. 펜을 장검처럼 틀어쥐고 건축과 디자인 세상을 수십 년 종횡무진한 인물의 키워드 모음집. 한국어판 서문 첫머리에 “종이책은 건재하다”라고 썼다. 이런 글이 계속 나온다면, 그 주장은 유효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바이 디자인#현대미술#건축평론가#데얀 수직#데이미언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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