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신부 “우리 각자는 한 그루의 큰 나무… 지친 길손에 쉼터 돼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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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첫 바티칸 大法 변호사 된 한동일 신부… 자전 에세이집 펴내

동아시아인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한동일 신부. 그는 “남들보다 모자라고 느린 내가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꿈이 무엇인지 알고 더디지만 끝까지 걸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동아시아인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한동일 신부. 그는 “남들보다 모자라고 느린 내가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꿈이 무엇인지 알고 더디지만 끝까지 걸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모자화’ 아세요? 성모자(성모 마리아와 예수)와 두 천사를 그린 그림인데요. 유학생활에 지칠 때면 이 중 한 천사를 ‘공부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천사’라고 생각하면서 견뎠지요.”

서강대 라틴어 강사인 한동일 사무엘 신부(44). 그는 2010년 로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에서 동아시아인 최초로 변호사로 임명됐다. 최근 자신의 인생 얘기를 담은 에세이집 ‘그래도 꿈꿀 권리’(비채·사진)를 펴낸 그를 23일 서강대에서 만났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타 로마나는 세계 가톨릭교회의 민·형사 소송과 행정소원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는 상설 법원. 매년 1만 건이 넘는 소송이 이곳에서 처리된다. 한 신부는 세계에 930명뿐인 로타 로마나 변호사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인이다.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인 2001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라테란대에서 교회법을 연구해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두 과정 모두 최우등(숨마 쿰 라우데) 졸업이었다.

“한국(부산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교회법학에 흥미가 있어 대학원 논문도 교회법에 대해 썼지요. 그 덕분에 유학을 가서 학위 논문 주제도 빨리 정할 수 있었어요.”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라틴어 ‘로타’는 수레바퀴라는 뜻이다. 대법관들이 수레바퀴처럼 둥근 원탁에 둘러앉아 판결을 논의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동일 신부 제공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라틴어 ‘로타’는 수레바퀴라는 뜻이다. 대법관들이 수레바퀴처럼 둥근 원탁에 둘러앉아 판결을 논의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동일 신부 제공
그는 2004년 가을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인 사법연수원 ‘스투디오 로탈레(Studio Rotale)’에 입학한다. 판례 연구와 실무 중심으로 진행되는 3년간의 연수원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라틴어 공부였다. 로타 로마나는 재판문서와 판결문 작성은 물론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유창한 라틴어 실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유럽 학생들도 ‘죽은 언어’라며 배우기 힘들어하는 라틴어를 한국인이 공부하려니 매 순간이 좌절과 도전의 연속이었지요. 대입 수험생처럼 사전을 통째로 외운 날도 있었어요. 지옥의 언어 훈련소가 있다면 바로 여기겠다 싶었지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건강이 악화돼 연수원 진급시험에 떨어지기도 했고, 2009년 응시한 첫 변호사 시험에선 낙방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한국에서 말기암과 싸우고 있는 노모 걱정에 “다른 신부들처럼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라며 후회한 날도 있었다. 재수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입학 동기 40명 중 시험을 통과한 이는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모든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을 그에게 물었다. “습관이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해빗(habit)의 어원이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란 사실 아세요? 원래 이 말은 매일 똑같은 삶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수도승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공부는 스스로를 절제하는 습관으로, 머리가 아닌 습관으로 길들인 몸으로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요?”

한 신부는 학기 중에는 라틴어를 가르치고 방학 때면 이탈리아 법무법인으로 날아가 로타 로마나의 소송 변론문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계속 일하는 게 저나 한국 교회를 위해 이득 아니냐고 말씀해 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공부하는 동안 넘치도록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제자에게 되돌려 주는, ‘남 주는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의 꿈은 가난하지만 꿈과 재능 있는 청년을 돕는 재단을 세우는 것이다. “저는 우리 각자가 한 그루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기대어 쉴 수 있는 큰 나무의 마음을 갖도록 청년들을 키워내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로 기적 아닐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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