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보습학원이 탁아방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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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A 씨(38·서울 양천구)는 올해 아들을 초등학교에 들여보낸 워킹맘. 평일 야근은 기본, 주말에도 자주 회사에 출근하는 그는 초등생 아들이 학교를 마친 뒤 공부와 식사, 생활관리를 모두 챙겨줄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들을 서너 곳의 학원에 보내는 방법으로 오후 시간을 억지로 때우게 하고 싶지 않았던 A 씨. 그는 오후 9시까지 아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집 근처 한 사설 영어도서관에 아들을 보냈다. 아들이 ‘영어사용 매니저’와 함께 영어공부를 한 뒤에도 ‘우리말사용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독서와 영화시청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이 영어도서관의 시스템이 눈에 들어온 것.

A 씨가 아들의 가방 속에 간식도시락을 넣어 보내면 매니저가 아들에게 도시락을 챙겨 먹이는 돌봄 서비스도 A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영어도서관 원장 박모 씨는 “지난달 A 씨가 미국 뉴욕으로 한 주간 출장을 갔을 때도 매니저와 수시로 통화하며 아들을 믿고 맡겼다”면서 “어린 학생들은 화장실 가는 것도 매니저가 직접 챙겨주니 워킹맘들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최근 미술학원, 유료 도서관, 공부방 등 사설 교육시설들이 워킹맘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늦은 시간까지 자녀를 돌봐주는 것은 물론이고 위생관리와 식사, 학교 숙제관리까지 챙기면서 ‘엄마 노릇’을 대신해주는 전략으로 워킹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경기 수원 장안구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조모 씨(47·여)는 미술학원을 아예 방과 후 ‘베이스캠프’로 제공했다. 수강생들이 학교를 마치면 곧장 미술학원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고 저녁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것. 학생들이 각자 보습학원 숙제를 한 뒤 학원에 다녀오면 조 씨는 빵과 우유 같은 간식도 챙겨 먹인다.

워킹맘을 위한 조 씨의 특별 서비스는 ‘자녀교육 상담’. 조 씨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데리러 오면 중학생, 초등생 남매를 키운 내 경험을 토대로 육아 관련 노하우도 아낌없이 전해준다”고 했다.

한편 가정에서 운영하는 보습학원인 ‘공부방’들도 적극적으로 ‘엄마의 손길’을 대행해주는 모습이다. 학습지 전문교사를 하다 두 달 전 자신의 아파트에 공부방을 연 B 씨(34·인천 부평구)는 초등생들을 직접 학교에서 데려온 뒤 ‘엄마표’ 식사를 제공한다. 김밥, 과일, 떠먹는 요구르트 등 학생들에게 주는 식사는 ‘인증샷’ 사진도 찍어 블로그에 게시한다. 밥 먹기 전에는 손 씻기, 옷 걸기 등 기본 생활규칙을 가르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B 씨는 “학교에서 가져오는 알림장과 숙제를 일일이 점검하고 일기쓰기도 마친 상태로 집에 데려다주니 워킹맘이 퇴근 후 할 일은 자녀를 씻겨 재우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워킹맘을 위해 일선 초등학교가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교실’ 프로그램도 늘어나는 상황. 하지만 일부 학교 돌봄교실의 경우 20여 명의 학생이 학년 구분 없이 한 교실에 뒤섞여 있거나 돌봄 교사가 종종 바뀌는 등 관리가 체계적이기 못해 자녀를 맡기기가 꺼려진다는 게 학부모들의 의견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C 씨(인천 부평구)는 “최근까지 학교 돌봄교실에 초등 1학년인 아들을 보내려고 입실대기번호를 받아놨는데 간식은 우유 한 개 정도로 부실하고 오후 5시 이후에는 학생 한두 명만 교실에 남는 상황이어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아들을 돌봄 맞춤형 공부방에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한 워킹맘 김모 씨는 “초등 1, 2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 입장에선 숙제를 챙겨줄 사람이 가장 절실하다”면서 “서울의 일부 유치원 중에는 해당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숙제를 도와주고 간식도 챙겨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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