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엄마의 고민 ‘제대혈 보관’

  • 입력 2009년 7월 22일 02시 54분


《몇 년 전부터 임신부의 ‘출산 준비 리스트’에 오른 새로운 항목이 있다. 바로 제대혈 보관이다. 제대혈이란 탯줄 안에 있는 혈액을 채취한 것으로, 그 어느 혈액보다 성체줄기세포가 많이 들어있다. 혹시 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난치병에 걸리면 냉동보관해 둔 성체줄기세포를 해동해 치료용으로 쓰기 위해 보관해두는 것이다. 보관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아이의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엄마들이 제대혈을 포함한 줄기세포 보관 업체를 찾고 있지만 학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업계 “10년후도 문제없다”

학계 “제기능 할지 장담못해”

15년 보관에 90만∼160만원… 아이 미래위한 보험 될까?

이 업체들은 첨단 의학 장비를 갖췄기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난 후 꺼내 써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줄기세포 보관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이 점을 근거로 일부 의학자들은 “십수 년 후 줄기세포를 해동해 치료에 활용할 때 당초 의도대로 제 기능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다분화능줄기세포로 나뉜다. 이 중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생명 윤리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가장 연구가 활발한 분야다. 몸의 여러 조직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는 제대혈, 골수, 지방세포, 혈액에서 채취가 가능하다. 백혈병, 난치성 혈액질환 치료는 성체줄기세포 내 조혈모세포를, 당뇨병, 관절염 치료는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용한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 제대혈, 혈액암 치료에 가장 효과적

줄기세포 보관 업체 중 가장 먼저 나타난 게 바로 제대혈 보관 업체다. 시장 규모가 2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민간업체들은 제대혈을 15년간 보관해 주고 있으며 비용은 90만∼160만 원 선이다.

제대혈은 주로 혈액암처럼 새로운 골수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데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조직 이식을 위해서는 6종류의 백혈구 항원(HLA)을 검사한다. 골수 이식이 가능하려면 이 6개의 항원이 기증자와 대상자가 모두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제대혈은 3, 4개만 일치해도 이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골수보다 면역거부 반응이 적고, 제대혈은행에 많은 양을 보관하고 있어 이식에 적합한 제대혈을 찾기가 쉽다. 골수는 채취하려면 전신마취가 필요하지만 제대혈은 이런 불편도 없다. 우리나라의 소아암 치료율은 80%로 높은 편인데, 제대혈 조혈모세포 이식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다만 유전적 문제가 원인이 된 소아백혈병(전체의 5%)은 제대혈 이식이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병을 일으키는 비정상 유전자가 제대혈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식을 받아도 같은 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반적인 백혈병 치료율도 타인의 골수 이식이 70% 이상인 반면 타인의 제대혈 이식은 40∼50%로 낮은 게 단점이다. 개인 보관 제대혈의 치료율은 이보다 더 낮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보다 제대혈을 공여하는 것이 낫다.

○ 성체줄기세포 임상단계 연구 활발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 문제를 피해 갈 수 있어 최근 연구가 활발하다. 박원순 장윤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팀은 갓 태어난 쥐의 손상된 폐에 인간 성체줄기세포의 하나인 ‘제대혈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식한 후 폐 손상이 회복되는 걸 확인했다. 김승업 중앙대 의대 의학연구소 석좌교수는 뇌출혈을 일으킨 쥐의 뇌 부위에 인간 신경줄기세포를 이식해 뇌중풍(뇌졸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성체줄기세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문이 많다. 세계적으로 간, 당뇨병, 관절염 등의 분야에서 150여 종의 세포치료제가 임상시험 중이지만 아직 제품 출시는 미미한 편이다. 오일환 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장은 “골수 이식용으로 제대혈을 보관하고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세포 치료 목적으로 지방세포, 제대혈 등을 보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분화 능력이 떨어지는 중간엽 줄기세포로 간 세포를 만들어내는 식의 고도 기술은 아직 연구 수준이라는 것.

○ 제대혈 보관 못했다면 혈액서 채취할 수도

제대혈을 보관할 기회를 놓쳤다면 아이들의 말초 혈액에서 직접 성체줄기세포를 채취할 수도 있다. 비용은 169만∼179만 원. 업체들은 보관 기간이 제대혈보다 길다고 주장하고 있다.

혈액암 치료에 이용되는 골수내 줄기세포는 이미 수십 년간 쌓아온 골수 이식술 노하우가 있으며 골수 이식보다 면역 거부 반응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관 비용은 130만∼150만 원 들고 보관 기간은 15년이다.

인체에서 지방 흡입 과정을 통해 채취한 지방조직에도 줄기세포가 포함되어 있다.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한 성형은 기존 지방 이식보다 시술이 쉬운 데다 채취도 간단한 편이라 성형 같은 재생 의학에서 활용도가 높다. 그러나 보관 기간이 3년으로 짧고 보관비용은 230만∼350만 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박지현 대학생 인턴기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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