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7연속 준우승… ‘神算’은 어디갔나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끝내기 실수로 역전패 잦아
“부담감 떨쳐야 징크스 탈출”

“꼭 부진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연속 일곱 번 하는 건 이창호 9단 답지 않다.”

이창호 9단(34·사진)은 최근 끝난 후지쓰배 결승에서 강동윤 9단에게 두집 반으로 져 준우승했다. 2005년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시작으로 메인 세계기전에서 일곱 번 연속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특히 올해 응씨배 춘란배 후지쓰배 세 번 모두 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셔 ‘결승 진출=우승’이란 옛 명성 대신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 9단의 부진에 대해 “연령으로 보면 전성기를 지나 하향세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결승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 아직도 대단하다”는 의견도 있다.

▽끝내기에서 역전당해=이창호 9단은 ‘신산(神算)’으로 불릴 만큼 끝내기에서 독보적 존재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종반 역전극’이라고 할 만큼 끝내기에서 뒤집는 판이 많았다. 그래서 종반에 들어설 무렵 이 9단이 앞서고 있으면 상대가 자포자기에 빠지거나 이 9단을 앞서고 있어도 불안에 떠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결승 대국을 보면 질 수 없는 우세를 확보해 놓고도 끝내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춘란배 결승 1국에선 유리했던 이창호 9단이 무난한 마무리를 외면하고 조금 더 이득을 보려다가 창하오 9단에게 승부수를 허용해 대역전패했다. 1 대 2로 뒤진 상태에서 맞은 응씨배 결승 4국에서도 이변이 없는 한 이 9단의 승리가 확실한 시점에서 무리한 수를 연발하며 자멸했다.

김승준 9단은 “과거에는 필패의 바둑을 역전시키는 것이 이 9단의 장기였으나 이젠 거꾸로 당하고 있다”며 “침착함의 대명사였던 이 9단이 종반에 바둑을 일찍 끝내려고 서두른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초읽기에 몰려도 정확히 계산서를 뽑던 기량이 전성기 시절에는 못 미친다는 점, 젊은 기사들의 끝내기 실력이 ‘이창호 급’으로 올라섰다는 점도 있지만 종반 끝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탓도 크다는 분석이다.

▽실력은 녹슬지 않았는데=어쨌든 결승까지 올라가는 것은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역대 전적 30승 21패)이나 구리 9단(5승 4패)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친다. 이창호 9단은 응씨배 4강에서 이세돌 9단에게 2 대 0으로 이겼으며 지난해 말 춘란배 8강에선 구리 9단을 완파했다.

2007년 그를 괴롭히던 건강 문제도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다. 프로기사들은 이 9단이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게 ‘준우승 징크스 탈출’의 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재호 9단은 “우승에 몇 번 실패하면서 한국바둑의 마지막 수문장이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부담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9단의 부담은 대국 도중 상대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그의 앞에 서면 주눅 들게 하던 ‘강자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이 9단에게 12연패를 당했던 창하오 9단은 6월 이 9단을 꺾고 춘란배에서 우승한 직후 인터뷰에서 “이 9단의 실수가 전보다 많아졌다”며 “지금은 이 9단이 앞서고 있어도 상대가 (포기하지 않고) 완강하게 저항하면 이것이 부담으로 작용해 실수가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건 9단은 “한방에 바둑을 그르치는 큰 실수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실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보긴 힘들다”며 “한 번 우승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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