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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학,장르를 박차다]<4>시인 김경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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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학,장르를 박차다]<4>시인 김경주 씨

입력 2009-07-13 02:59수정 2009-09-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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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끝없는 유랑

최근 인터넷에서는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좀 안다”고 말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필수, 금기사항을 정리한 매뉴얼로 철학이나 컴퓨터부터 와인, 소녀시대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그 아이템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당신을 한국문학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 편을 패러디해 이 시인을 소개해보자면, “일단 김경주 시인이 누구냐고는 절대 묻지 마십시오. 다른 문학전문가들에게 ‘개무시’ 당할 수 있습니다.”

김경주 시인(33)은 두 권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년) ‘기담’(2008년)으로 2008년 비평가와 작가들이 선정한 ‘현대시를 이끌어갈 젊은 시인 1위’(계간 ‘서정시학’), 올해 초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계간 ‘시인세계’) 등에 선정된 시인이다.

2003년 서강대 철학과 재학 중 등단했으며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 다양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시와 희곡의 장르적 경계를 허문 실험적인 시인이자, 희곡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쓴 극작가이며 문학콘서트 등을 기획하는 공연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는 오전 9시 작업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의 24시간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홍대 앞의 한 공원에서 만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창밖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마다 “일상을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가란 사실”을 느낀다고 한다. 그 고유한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서 1년에 두세 달 이상은 꼭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지금까지 시베리아, 몽골 등을 횡단했고 이탈리아에서 그리스까지 지중해 일대를 배로 훑었다. 일본의 도쿄, 중국의 상하이 등 특히 좋아하는 도시들은 수시로 방문해 ‘패스포트’ ‘레인보우 동경’ 등의 산문집도 펴냈다.

여행은 단지 휴식이나 재충전의 의미를 넘어 그의 시작(詩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행을 떠나는 건 여행지에 대한 매혹뿐 아니라 돌아왔을 때의 여진 때문이기도 해요. 내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언어로 복원해내는 것이죠. 여기와 그곳의 ‘사이’를요. 시도 마찬가지예요. 언어와 언어, 언어와 사람,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시가 탄생하잖아요. 그런 시적인 질감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거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공간이 ‘공항’이며 낯선 언어의 간판이 보일 때의 어리둥절함과 사전을 찾아가면서 길을 헤매고 다니는 느낌이 더없이 즐겁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얻는 소재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여행이 주는 시차와 멀미, 현기증 같은 느낌이 모여 시가 이뤄진다. 그는 평소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인용했다.

“키냐르는 ‘시라는 것은 단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평생 말 더듬는 현상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가진 수증기’라고 했어요. 그 말처럼 시라는 건 하나의 문학 장르라기보단 어떤 ‘상태’나 ‘이미지’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시적인 느낌들은 텍스트가 아니더라도 시극 무용 연극 마임 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시가 새로운 공연의 모태가 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시의 외연을 다양한 장르로 부단히 확장해 가는 게 그의 관심사다. 그는 “경계가 주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며 “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유목하는 것이 삶 자체이듯 시적인 느낌을 확장시키는 것 역시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찾아오는 사람이 있든 없든 홍대 인근 클럽에서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이면 시를 다양한 퍼포먼스로 변환한 텍스트 실험극을 하고 있다.

낯설고 난해한 그의 시는 얼핏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두 시집이 각각 7000부, 1만 부 이상씩 팔렸을 정도로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호응은 여러 도시를 떠돈 경험, 홍대 앞 인디문화의 감수성 등으로 다져진 ‘새로운 서정’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선원이 얼마나 많은 별자리를 아느냐가 중요했지만 현대의 선원들은 별자리를 몰라도 기술적 진보를 통해서 항해를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잘못된 항해나 나쁜 항해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두 쪽 모두 바다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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