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忠과 孝의 탈을 쓴 야만‘전통’…‘전통과 중국인’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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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중국인/류짜이푸, 린강 지음·오윤숙 옮김/624쪽·2만8000원·플래닛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저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개성을 무시한 채 하나의 가치가 인간 삶을 지배하는 사회의 잔혹 무도함에 치를 떤다. 이 잔혹 무도한 사회는 유가 도가 불가 등 전통문화가 지배한 근대 이전의 중국.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소장 출신의 류짜이푸와 이 연구소 연구원 출신의 린강은 루쉰 등 근대 지식인들의 처절한 전통 비판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한편 전근대 중국인의 정신을 지배한 전통사상의 수용, 왜곡 과정을 추적한다. 류짜이푸는 1980년대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진보적 지식인이다.

저자들은 전근대 중국의 예치(禮治) 질서가 개인을 독립된 인격이 없는 ‘애송이’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한다. 장유유서라는 고정 불변의 올무는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뒀다. 이 종속 관계는 한 개인을 더 강한 사람의 노예이자 더 약한 사람의 상전으로 만들었다. 상전에게 먹힌 사람은 노예를 먹는 ‘식인’ 문화일 뿐이었다.

유가의 도덕이 인간 존엄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자 잔혹함이 하늘을 찔렀다. 자신의 아이가 어머니 봉양에 방해가 될까 봐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한 곽거의 이야기가 효의 대표처럼 전해 내려온다. 당(唐)의 정사서 ‘구당서’엔 당을 뒤흔든 ‘안사의 난’ 와중에 성이 포위돼 식량이 떨어지자 첩을 죽여 군사에게 인육을 먹인 장순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관은 장순의 충성을 극찬했다. 잔인성과 야만성의 극치가 도덕의 탈을 쓰고 고귀한 희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루쉰은 구악(舊惡)의 뿌리가 너무 깊어 이를 그대로 둔 채 개혁을 외치는 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그래서 전통에 대한 격렬한 비판은 잘못을 선조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참회를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루쉰의 ‘아큐정전’은 인간의 영혼을 마비시켜 우둔하게 만드는 당시 문화의 죄악상을 폭로했다. 한평생 멸시당하면서도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저항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상황을 합리화하는 ‘정신승리법’.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 머릿속 사상의 정진에 만족한 고대 선비와 다를 바 없다.

책 내내 공자는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린강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유가문화가 잘 계승된 한국에서 책 출간이 반갑기도 하지만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굳이 이 책을 유가사상의 거부로만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1987년은 문화대혁명 이래 중국을 지배하며 개인을 억압한 파시즘이 판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저자들의 전통 비판 곳곳에서 전체주의 비판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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