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또 당할지…” 피랍자 가족들 공황상태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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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를…”탈레반 무장세력에 살해된 심성민 씨의 어머니(왼쪽)가 31일 새벽 심 씨의 피살 소식을 듣고 급히 경기 성남시 피랍자대책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오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차라리 나를…”
탈레반 무장세력에 살해된 심성민 씨의 어머니(왼쪽)가 31일 새벽 심 씨의 피살 소식을 듣고 급히 경기 성남시 피랍자대책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오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1일 심성민(29) 씨의 사망 소식은 피랍자 가족들을 정신적 ‘공황’에 빠뜨렸다.

이틀 전 국내외 언론을 통해 그의 육성을 내보냈던 탈레반이 무자비한 살인을 자행했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육성 공개의 부메랑=목소리뿐이었지만 무사히 살아 있음을 확인했던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선 순간, 심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심 씨의 육성이 외신을 통해 공개된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한 피랍자 가족은 “탈레반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심 씨를 살해한 것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결국 걱정했던 대로 인터뷰를 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우려했다.

피랍자에 대한 인터뷰 보도가 결국 ‘살인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도 오히려 생사를 확신할 수 없게 됐다.

피랍자 한지영(34) 씨의 어머니 김택경(62) 씨는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된 인질들의 동영상을 본 후 “딸의 모습을 봤지만 가슴이 미어져 안 보는 것만 못했다”며 가슴을 쳤다.

특히나 가족들은 ‘언제, 누가 또 희생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남자 인질을 먼저 차례로 살해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남성 피랍자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피랍 봉사단원 중 남성은 고 배형규 목사, 고 심성민 씨 외 제창희(28), 서경석(27), 고세훈(27), 유경식(55), 송병우(37) 씨 등 5명이 있다.

▽현지 교민들 “모방 납치 잇따를까” 우려=아프간에 있는 우리 교민과 봉사대원들은 모방 범죄가 꼬리를 물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한 기아구호 단체의 아프간 지부장 최모 씨는 이날 통화에서 “유사한 납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 북부에서 활동하는 최 지부장은 “현지 주민들은 대체로 한국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지난해 8월 카불에서 한국인들이 열려다 실패한 대규모 선교행사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후 활동까지 중단하고 현지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순수한 봉사활동이란 점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 겨우 관계를 회복했는데 다시 분위기가 나빠져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수 준비를 시작한 봉사단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오전에 본부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 정부가 철수를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더라”며 “당장 움직이기는 힘들지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워낙 납치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또 어떤 무장단체가 이번 사건을 흉내 내지나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현지에 진출한 건설업체 소장도 “평상시에도 자살폭탄과 납치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이번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면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비난이나 피랍자 가족의 눈물을 전혀 개의치 않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시민과 누리꾼 ‘경악’=시민들도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저버린 탈레반의 태도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인테리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구자규(32) 씨는 “본인들이 봉사하기 위해 선택한 곳에서 어려움에 처하긴 했지만 생명은 고귀한 것이므로 무엇보다 살아 돌아오는 것이 급선무”라며 “생명을 볼모로 정치적 게임을 하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회사원 정훈(37) 씨는 “사태가 길어질수록 추가 살해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국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게 정부의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우리 정부와 미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당혹해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kimes62’란 ID를 쓰는 누리꾼은 “우리 국민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ID ‘ssu167’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해서는 안 되며 피랍자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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