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70년 발레 ‘코펠리아’ 초연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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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광장에서 보이는 코펠리우스 박사의 집 발코니에는 유리구슬 같은 눈을 가진 예쁜 소녀 코펠리아가 앉아 있다. 마을 총각들은 난리가 났다. 반가워 말을 건네 보지만 새침한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코펠리아는 태엽인형이었던 것이다.

1870년 5월 25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코펠리아’. 섹시하고 아름다운 자동인형을 두고 마을의 처녀, 총각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이 발레는 기괴한 인형의 춤을 비롯해 각국 민속무용이 등장하는 즐거운 희극 발레다.

19세기 발레 걸작 중 비극의 전형이 ‘지젤’이라면 희극 발레의 전형은 ‘코펠리아’다. ‘코펠리아’에는 19세기 유럽사회에서 급격히 발전하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일도 가정도 버린 채 실험에 열중하는 초기 과학자들의 모습, 과학에 대한 흥미와 불신감…. ‘코펠리아’에 등장하는 괴짜 과학자 코펠리우스는 과학자라기보다는 마법사나 연금술사처럼 악마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코펠리아’는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의 ‘모래 도깨비’(1817년)를 원작으로 파리 오페라극장의 전속 대본가 샤를 뉘티에가 대본을 썼다. 아름다운 자동인형 올랭피아가 등장하는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호두까기 인형이 소녀의 꿈속에서 멋진 왕자로 변하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도 모두 호프만이 쓴 작품이다.

‘자동인형’은 기계문명에 빠진 인간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이것은 현대문학이나 영화에서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로봇, 가상인간으로 수없이 변주됐다. 예술작품 속에서 인간처럼 보이는 가짜 생명체들은 끊임없이 인간들을 유혹하고 위협한다.

‘코펠리아’가 만들어진 무렵은 ‘라 실피드’로 시작해 ‘지젤’로 이어지는 프랑스 낭만발레의 마지막 불꽃이자 낭만주의 시대 최후의 걸작들이 나온 시기였다. 당시 상체를 꽉 죄고 짧게 펼쳐진 치마로 된 ‘로맨틱 튀튀’ 의상,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Pointe)’ 기법,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들어올리는 ‘파드되’(2인무) 등 발레 테크닉이 개발됐다. ‘코펠리아’ 이후 발레의 중심 무대는 서서히 러시아로 옮겨졌다.

마침 6월 5, 6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서울발레시어터가 ‘코펠리아’를 공연한다. 13년 만에 무대에 서는 안무가 제임스 전이 과학자 코펠리우스로 등장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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