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23>김윤식 문학기행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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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섬나라와 반도. 하나는 땅에 안정되고, 하나는 땅에서 즐기고, 하나는 땅을 떠난다. 첫째의 길은 강하고, 둘째의 길은 즐겁고, 셋째의 길은 쓸쓸하다. 강한 것은 숭배되기 위해서, 즐거운 것은 맛보이기 위해서, 쓸쓸한 것은 위로받기 위해서 주어졌다.》

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가로 명성 높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의 기행문집이다. 김 교수가 국문학 연구에 바친 평생의 노고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가 예술적인 기행 산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득한 회색 선연한 초록’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 ‘환각을 찾아서’ 같은 저서들은 여행가이자 예술적인 산문가인 김 교수의 면모를 잘 보여 준다.

‘김윤식 문학기행’에서 저자는 몽골의 울란바토르, 네팔의 카트만두, 중국의 타이산(泰山) 산과 룽징(龍井), 그리고 일본 도쿄(東京)같이 ‘텅 빈’ 세계를 떠돌면서 우리 문학과 문화의 자취를 찾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들을 잡아내고자 하는 이 책은 영혼의 순례집이다. 여기서 저자는 바야흐로 샤머니즘의 영매가 된 것처럼 두 손에 영혼의 대나무를 쥐고 우주의 리듬에 반응해 나간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일생 동안 자기의 생각을 실체화하고 싶었다고 썼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저자는 무수히 많은 논문을 썼지만 갈증은 풀리지 않았고, 때문에 그는 ‘순수 감각’의 힘으로 자신의 생명을 노래하고 싶어 했다.

모름지기 연구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 밀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주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생명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기행 산문들은 그러한 도주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야생과 원시의 공간을 떠돌면서 근대적인 인식과 미의식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의 고단한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길은 아무리 멀리 나아가도 결국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김 교수에게 ‘여행’은 문학 연구가답게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여행 과정에서 두통과 피로감을 선사하는 타자의 낯선 존재감은 대상을 인식하는 ‘나’의 한계를 일깨운다. ‘나’는 ‘나’의 ‘외부’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일찍이 일본의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석굴암과 조선의 민예품에서 얻은 기묘한 미의 체험을 저자는 이 산문집의 여행 속에서 되풀이한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란 없다. ‘김윤식 문학기행’은 ‘울림’과 ‘헛것’을 찾는 저자의 신선한 감성과, 인식의 한계에 관한 현대판 이론 및 지식이 서로 맞서고 서로 삼투됨으로써 창출되는 어떤 고상한 국면을 연출한다.

이론과 지식의 측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오리엔탈리즘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을 향한 그의 여행은 이런 이지의 영역을 초월해 나간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영혼을 젊게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없는 갈증, 그 비상한 초월 의지로 인해 기행문집 속의 그는 언제나 젊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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