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레이건 닮고 싶다” 1시간 30분동안 20차례 언급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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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대선주자 첫 토론회

3일 밤 열린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 이번 선거에서 처음 열린 토론회지만 10명의 후보는 이날 주인공 대접을 못 받았다. 토론 내내 중심에 선 인물은 냉전 말기 8년간 재임하면서 미국의 자존심을 살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후보들은 너나없이 “그의 낙관주의와 단호함을 닮고 싶다”고 했다. 90분간 진행된 토론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공화당의 모범 대통령’은 20번이나 거론됐다. 토론회 장소까지도 때맞춰 캘리포니아 주의 레이건 기념도서관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언급된 것은 8번에 그쳤다. 1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민주당 후보 8인의 토론회 때는 상호 경쟁에 앞서 ‘부시 때리기’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날 토론회의 최대 관심은 2강 1중 구도를 형성한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애리조나 주) 상원의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3각 경쟁이었다. 주관방송사인 MSNBC의 진행자는 “롬니가 돋보였고 매케인은 명성에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날 공화당 후보들은 이라크 전쟁 지지, 세금 감면을 통한 경제 활성화엔 한목소리였지만 낙태 종교관 등 사회이슈에선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진행자가 “진화론을 믿느냐”고 물었다. 3명이 손을 들었다. 북한 인권법을 주도한 샘 브라운백(캔사스 주) 상원의원과 불법이민자의 단호한 처리를 주장해 온 톰 탠크레도(콜로라도 주) 하원의원 외에 개신교 목사 출신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도 손을 들었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과학과 신앙을 아우르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과학을 믿는다. 그러나 (내 지역구에 있는) 그랜드캐니언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계신다’는 생각이 분명해진다”고 말했다.

낙태문제는 9명의 후보가 “낙태 금지법이 위헌이라는 1973년 대법원 판시가 뒤집혀도 좋다”며 낙태 불법화를 지지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낙태 금지도 좋다…. 하지만 여성의 (낙태할) 선택권도 필요하다”며 모순된 말을 했다. MSNBC는 토론회 직후 ‘혼란스럽다’고 평가했다.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은 모두가 지지했다. “앉아서 당할 게 아니라 병력 증파로 돌파해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최근 구상도 이들은 대체로 지지했다.

오래전부터 ‘병력증파’를 주장하다가 반전 여론에 지지율이 2위로 내려앉은 매케인 의원은 “전쟁 경영에 큰 실수를 했다”며 부시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은 미국이 전쟁에 졌다고 말한다. 그럼 알카에다가 이겼단 말인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의 아성인 뉴욕과 매사추세츠 주에서 당선되는 과정에서 ‘진보적 공화당원’으로 굳어진 줄리아니 전 시장과 롬니 전 주지사는 부시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해 줌으로써 보수적인 공화당 유권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을 지냈던 줄리아니 전 시장은 “9·11 테러 이후의 대테러 정책은 옳았다”고 말했고, 롬니 전 주지사는 “부시 대통령의 인품과 열정, 조국애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10명의 후보에겐 예외 없이 30초의 발언시간이 주어졌다. 평생을 ‘말하기’로 살아온 이들이지만 시간제약 탓에 말이 빨라졌다. 모든 이슈를 차별성 있게 설명하기에는 1인당 8분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TV 비평가들은 “이런 토론은 논리보다는 제스처와 특징적 표현이 승부를 가른다”고 말했다. 이날 화제에 오른 말로는 “오사마 빈 라덴을 지옥의 입구까지 쫓아가겠다”(매케인 의원)가 꼽혔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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