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上海 민족학교 터는 지금… ‘민족魂 상징’ 헐린다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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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꿈 키우던 그곳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가까운 옛 인성학교. 임시정부 청사는 문화재로 지정돼 헐리지 않지만 민족 교육을 하던 이곳은 재개발로 사라지게 됐다. 사진 제공 중국 상해한국학교
독립 꿈 키우던 그곳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가까운 옛 인성학교. 임시정부 청사는 문화재로 지정돼 헐리지 않지만 민족 교육을 하던 이곳은 재개발로 사라지게 됐다. 사진 제공 중국 상해한국학교
“상하이(上海) 재개발사업으로 민족혼이 서린 옛 학교 건물이 조만간 사라지게 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의 유일한 민족 학교였던 ‘인성학교(仁成學校)’ 건물을 최근 찾아냈으나 이 건물이 상하이엑스포(2010년)를 앞두고 철거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학교는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선생이 1917년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았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 총영사관이 일본 국정교과서와 일본어를 사용해 교육하도록 하는 등 탄압을 강화하자 1935년 11월 자진 폐교했다.

상하이에 사는 교민의 성금과 학비로만 운영됐기 때문에 폐교할 때까지만 해도 번듯한 교사(校舍)도 없이 시내 여러 곳을 전전했다.

학교 발자취를 추적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인성학교 연구회’는 최근 현장답사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한 블록 떨어진 루완(盧灣) 구 마당(馬當) 로 셰청(協成) 리 1호에 있는 옛 학교 건물을 찾아냈다.

허름한 2층 건물로 현재는 1층이 상가로 바뀌었다. 2층은 중국인이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26년 10월부터 폐교할 때까지 학교 건물로 사용됐다.

인성학교는 해마다 상하이 거주 한국인 자녀 등 졸업생 50∼70명을 배출했다. 교장과 교사를 지낸 사람은 60여 명. 대부분 독립지사였다.

안창호(安昌浩) 김두봉(金枓奉) 선우혁(鮮于爀) 선생이 교장 겸 교사로 활동했다. 김규식(金奎植) 선생은 영어를 가르쳤다.

동아일보사는 1924년 1월 이 학교의 재정난을 덜기 위해 중국 돈 1144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인성학교 졸업장(1926년).
3·1절과 한일강제합방이 이뤄진 8월 29일 국치일에는 상하이 교민들이 이곳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면서 기념식을 치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학교는 광복 후인 1946년 다시 문을 열고 북한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다 학생수가 크게 줄자 1981년 문을 다시 닫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상하이에 들어오는 한국 교민이 크게 늘자 초등학교와 중고교 과정을 가르치는 상해한국학교가 1999년 민항(閔行)구 신쑹(莘松)로에 개교해 인성학교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해마다 4월 상하이 루쉰(魯迅) 공원(옛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열리는 윤봉길(尹奉吉) 의사 의거 기념일에는 한국 학생들이 자원봉사나 백일장에 참여한다.

상해한국학교는 정부 지원금 490만 달러와 교민 성금 210만 달러를 기금으로 6월 경 새 건물로 옮긴다. 연면적 2000여 평으로 체육관 기숙사 도서관을 갖춘다.

연구회원인 김경화(28·여) 교사는 “6월경 학교가 신축되면 상해한국학교의 새로운 역사가 계승되겠지만 민족혼이 깃든 옛 건물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하이=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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