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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몸 이야기]<21>클래식 연주자의 새끼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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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몸 이야기]<21>클래식 연주자의 새끼손가락

입력 2006-02-11 03:06수정 2009-10-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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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서는 곡의 가장 중요한 베이스와 멜로디 라인을 대부분 양손의 새끼손가락이 이끌어 간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이’ 모두 소중하다지만, 사실 새끼손가락은 가장 쓸모가 적고 하찮게 여겨지는 손가락이다. 다른 손가락에 대한 의존성은 높고, 독립성은 부족하다. 가령 다른 손가락은 놔둔 채 한 손가락씩 까딱까딱 움직여보면 새끼손가락만 움직임이 느리고, 옆 손가락도 덩달아 끌고 간다.

하지만 클래식 연주자에게만큼은 힘없는 새끼손가락이 막강한 ‘파워’를 갖는다.

피아니스트들은 “새끼손가락은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아노에서는 베이스와 멜로디가 중요한데 최저 성부(가장 낮은 음)인 베이스를 왼쪽 새끼손가락이, 멜로디를 이끄는 최고 성부(가장 높은 음)를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치기 때문. 그래서 “피아노 선율 화음의 90%가량이 두 새끼손가락에 의해 좌우된다.”(피아니스트 안미현 씨)

왼손가락들로 현을 눌러야 하는 현악기도 마찬가지. 바이올린에서 손가락을 가장 많이 벌리는 음역은 ‘10도’(도에서 시작했을 때 그 다음 옥타브 미까지의 음역)다. 새끼손가락이 너무 짧으면 10도까지 손가락을 벌려야 하는 곡을 연주하기 어려워 새끼손가락이 짧은 연주자를 위한 주법이 따로 있다.

작곡가의 새끼손가락 길이는 곡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주자 양유진 씨는 “작곡가이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는 새끼손가락이 짧기로 유명해 그는 ‘치고이너바이젠’ 등 명곡을 많이 남겼지만, 8도 이상 손가락이 벌어지는 곡은 한 곡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끼손가락이 중요하다 보니, 연주자들은 새끼손가락 훈련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새끼손가락의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손가락에서 쥐가 날 때까지 새끼손가락과 약지로만 트릴연습을 하기도 하고(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영수 씨) 바닥에 종이를 펴 놓고 손가락으로 이를 움켜잡아 구기는 훈련을 통해 새끼손가락의 힘을 기르기도 한다(양유진 씨).

새끼손가락은 금관악기인 호른에서 가장 빛나 보인다.

“호른의 키는 왼손으로 누르지만 왼손 새끼손가락은 직접 키를 눌러 음을 내지는 않는다. 대신 다른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내내 악기 전체를 받치고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호른을 연주하다 보면 왼쪽 새끼손가락 힘이 세지고, 오른쪽 새끼손가락보다 더 굵어진다. 호른에서 왼쪽 새끼손가락은, 없으면 연주를 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손가락이다.”(서울시향 호른 연주자 조이진 씨)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여겨지는 새끼손가락이 ‘있는 듯 없는 듯’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른 손가락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묵묵히 받쳐 주는 이 ‘작은 거인’에게 박수를….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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