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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좌 완등 엄홍길 씨 최고경영자들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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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좌 완등 엄홍길 씨 최고경영자들에 강연

입력 2006-02-09 03:03수정 2009-09-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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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성공보다 실패가 있었기에 현재의 제가 있습니다.”

산악인 엄홍길(46·사진) 씨는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한국능률협회 주최로 열린 ‘신춘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기업 경영자들 앞에 연사로 섰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5좌 완등(完登)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엄 씨는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잘라내고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아픔을 얘기하면서도 ‘경영’이란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CEO들은 그에게서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투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엄 씨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부모님 때문에 어린 시절 내내 산속에서 살았다”며 “‘왜 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한 1985년을 떠올렸다.

“당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있는 대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들 손가락질했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지만 ‘인간의 미약함’을 느끼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대원 한 명이 죽었다. ‘두 번 다시 히말라야엔 안 간다’고 결심한 후 내려왔다.

한국에 돌아와선 산을 잊어 보려고도 했다고 털어 놨다. 결국 3년 뒤인 1988년 엄 씨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아…도전하니까 되는구나!’

그 이후 2000년까지 그는 히말라야에 28번 도전했다. 그중 딱 절반인 14번을 실패했다. 하지만 어떤 좌절도 그의 도전 정신을 막진 못했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등반으로 기억된다.

“다리에 중상을 입고 등반 도중에 한 발로 내려왔습니다. 의사가 ‘앞으로 산은 못 오른다. 걸어 다니는 걸로 만족하라’고 했죠. 그 많은 동료의 시신을 끌어안으면서 살아왔는데…. 눈물밖에 안 나왔습니다.”

퇴원한 뒤 도봉산을 보는 순간 다시 가슴이 쿵쿵거렸다. 깁스를 풀고 북한산 정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 마침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안나푸르나가 ‘문’을 열어준 것이다.

최고 산악인이자 만학도인 엄 씨는 24일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한다. 중국어를 전공한 것은 히말라야 등정을 하면서 의사소통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 엄 씨는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기쁘다”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다음 달에 에베레스트 동쪽 끝자락에 있는 로체(8400m) 등정에 도전한다. 16번째 히말라야 등정 목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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