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백년가약 맺는 정신지체장애 허영-이현숙씨

  • 입력 2005년 11월 8일 0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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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시설인 광주 남구 봉선동 ‘소화 천사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현숙(28·여·정신지체장애 3급) 씨는 요즘 싱글 벙글이다. 그는 며칠 후면 꿈에 그리던 면사포를 쓴다. 틈나는 대로 요리를 배우고 얼굴 마시지를 하며 신부수업을 하고 있다. 지능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인 이 씨와 결혼하는 허영(34) 씨도 정신지체장애 3급이다.》

장애인시설인 ‘교남 소망의 집’에서 사는 허 씨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에 방 두 칸에 주방 욕실이 딸린 16평짜리 신혼집을 구했다. 11일 결혼하는 두 사람은 모두 부모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이 씨는 여섯 살 때 5만 원이 입금된 예금통장과 함께 아동시설에 맡겨졌다. 허 씨도 부모 얼굴을 모른 채 보육시설에서 자라다 열 살 때 ‘교남의 집’으로 왔다.

결혼을 도와줄 일가친척이 하나 없지만 예비 장애인 부부는 외롭지 않다. 주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불씨를 지펴준 덕분이다. 두 사람은 1년 전 ‘교남 소망의 집’ 황규인(65) 원장과 ‘소화 천사의 집’ 김종순(66·수녀) 원장의 소개로 만났다. 허 씨는 첫 선을 보는 자리에서 이 씨가 마음에 들었다. 당시 전북 남원시 오리사육장에서 일하던 허 씨는 주말만 되면 소화 천사의 집으로 달려와 이 씨와 사랑을 키웠다.

소화 천사의 집 김행란(35) 사무국장은 “허 씨가 시도 때도 없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바람에 현숙 씨에게 휴대전화를 사주기까지 했다”면서 “만난지 얼마 안돼 두 사람이 커플룩을 사 입는 등 빠르게 가까워져 결혼식 날짜를 빨리 잡았다”고 말했다.

신혼집은 허 씨가 어렵사리 마련했지만 결혼식 비용이 문제였다. 예식을 올리는데 200만 원이 드는데다 신혼여행 경비와 가전제품 구입비도 상당했다.

예비 장애인 부부가 결혼 비용 때문에 애를 태운다는 사정이 알려지자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다.

광주 남구 진월동 유토피아웨딩홀이 예식장과 신랑·신부화장, 웨딩드레스 등 비용 전체를 무상지원하기로 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세탁기와 TV, 오디오 등 30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사주고 아시아나항공 광주지점은 광주∼제주 왕복 항공권을 내놓았다.

친정어머니나 다름없는 김 원장은 이들 부부가 거친 세파를 어떻게 해쳐나갈지 걱정이다.

김 원장은 “신랑이 현숙 씨를 따뜻하게 감싸줘 마음이 놓이지만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그동안 모은 돈을 대부분 써버려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벌써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다.

“오빠가 너무너무 잘해줘요. 결혼하면 술 담배를 끊고 청소를 해준다고 약속했어요. 오빠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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