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못할 것 없다=한나라당에서는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검찰은 수사에 필요한 테이프의 내용을 파악한 뒤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1일 “X파일 내용에 대해 전부 공개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뒤 기류가 달라졌다. 임태희(任太熙)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사생활 관련 대목은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공개돼서는 안 되지만 정치권 기업 등이 관련된 공적인 부분은 검찰이 공개하면 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현행법으로는 도청 테이프를 공개할 수 없으므로 특별법을 제정해 제3의 민간기구에서 합법적 절차를 밟아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나 내부적으로는 ‘공개 필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은 ‘완전 공개 후 불법 행위 처벌’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도 겉으로는 “테이프의 내용 공개 자체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호언하고 있다.
▽공개론의 속내=여야 모두 국민 여론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공개 불가론을 고수할 경우 “뭔가 뒤가 구린 게 있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차라리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으로 나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공개될 경우 혼자만 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배짱’도 작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불법 도청이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의 일이라는 점에서 내심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관련 사항이나 노무현(盧武鉉) 정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일부 있지만 설혹 그런 게 있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이 이날 “DJ 정부 시절 있었던, 전 국민이 경악할 엄청난 사건이 테이프에 담겨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초법적 발상 비판 목소리=검사장 출신의 김원치(金源治) 변호사는 “위법으로 수집한 자료는 증거능력이 없는 만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공개를 정당화하자는 논리는 국민감정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박준선(朴俊宣) 변호사는 “(제3의 기구는) 위법과 불법을 합법화하려는 초법적인 일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각 당내에서도 “이렇게 법 원칙을 무시하면 도청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한나라당 주호영·朱豪英 의원), “검찰 수사 등 정상적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한다”(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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