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공개 무방” 정치권 태도 돌변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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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가운데)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제3의 민간기구를 구성해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도록 하는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가운데)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제3의 민간기구를 구성해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도록 하는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정치권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 문제를 놓고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의 기(氣)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초 ‘상상을 초월할 대혼란’이 우려된다며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는 공개돼선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던 여야는 2일을 고비로 “공개 못할 것도 없다”며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공개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개 못할 것 없다=한나라당에서는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검찰은 수사에 필요한 테이프의 내용을 파악한 뒤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1일 “X파일 내용에 대해 전부 공개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뒤 기류가 달라졌다. 임태희(任太熙)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사생활 관련 대목은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공개돼서는 안 되지만 정치권 기업 등이 관련된 공적인 부분은 검찰이 공개하면 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현행법으로는 도청 테이프를 공개할 수 없으므로 특별법을 제정해 제3의 민간기구에서 합법적 절차를 밟아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나 내부적으로는 ‘공개 필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은 ‘완전 공개 후 불법 행위 처벌’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도 겉으로는 “테이프의 내용 공개 자체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호언하고 있다.

▽공개론의 속내=여야 모두 국민 여론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공개 불가론을 고수할 경우 “뭔가 뒤가 구린 게 있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차라리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으로 나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공개될 경우 혼자만 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배짱’도 작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불법 도청이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의 일이라는 점에서 내심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관련 사항이나 노무현(盧武鉉) 정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일부 있지만 설혹 그런 게 있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오른쪽)와 김무성 사무총장(가운데) 등이 참석한 가운데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 한나라당은 이날 이른바 ‘X파일’에 현 여권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제 기자
한나라당은 여권이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공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내부적으로는 내용이 공개되면 이미 수차례 망신을 당한 한나라당보다는 오히려 DJ 정부와 현 여권이 더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이 이날 “DJ 정부 시절 있었던, 전 국민이 경악할 엄청난 사건이 테이프에 담겨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초법적 발상 비판 목소리=검사장 출신의 김원치(金源治) 변호사는 “위법으로 수집한 자료는 증거능력이 없는 만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공개를 정당화하자는 논리는 국민감정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박준선(朴俊宣) 변호사는 “(제3의 기구는) 위법과 불법을 합법화하려는 초법적인 일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각 당내에서도 “이렇게 법 원칙을 무시하면 도청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한나라당 주호영·朱豪英 의원), “검찰 수사 등 정상적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한다”(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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