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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수백명 목숨구한 일본인…입증자료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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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수백명 목숨구한 일본인…입증자료 발견

입력 2005-07-04 03:14수정 2009-10-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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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한 뒤 조선인 학살의 광풍(狂風)이 일본 전역을 휩쓸던 당시 일본인 경찰서장이 학살 위기에 빠진 조선인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이 ‘일본판 신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은 요코하마(橫濱) 시 쓰루미(鶴見) 경찰서의 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당시 46세) 서장. 마이니치신문은 당시 조선인 300여 명을 경찰서 내에서 보호한 오카와 서장과 이들의 추방을 요구한 마을 의원들 간의 대화를 기록한 회고록이 공개됐다고 3일 보도했다.

회고록은 당시 쓰루미 마을 회의에 참석한 한 의사가 기록한 것으로 최근 그의 손자에 의해 발견됐다.

회고록에 따르면 의원들은 “경찰서장이 솔선해서 조선인을 단속해 불안을 일소해야 하는데 오히려 300명 이상을 보호하는 것은 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라며 “조선인이 소동을 일으키면 30명의 순사들로 진압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서장은 “(조선인의 약탈 등) 그런 이야기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단호히 맞섰다. 그는 “보호 중인 조선인의 소지품 검사를 했지만 작은 칼 하나도 없었다. 일단 경찰의 손을 떠나면 곧바로 전부 학살될 것인 만큼 수용인원이 늘더라도 보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니 경찰서로 와서 확인해 보라”고 제안했다.

대화 내용을 기록한 의사는 “유언비어가 아무 관계도 없는 조선인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고, 우리들도 한때 공포에 빠진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적었다.

오카와 서장은 1940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손자는 “정년 전에 경찰을 그만두었다고 들었다”며 “조선인을 두둔한 것이 문제가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1953년 재일조선인단체는 이 지역에 있는 서장의 묘 옆에 감사의 뜻을 담은 비석을 세운 바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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