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페루 축구 참사

  • 입력 2005년 5월 2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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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적인 스포츠’로 꼽히는 축구는 각종 폭력과 사고로 얼룩진 역사를 지녔다.

최악의 충돌로는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6일 동안 총부리를 겨눈 ‘축구 전쟁’이 손꼽힌다. 희생자 수로는 340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다 압사(壓死)한 1982년 모스크바 사건이 선두를 달린다. 하지만 축구의 광기(狂氣)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사례로는 1964년 페루 참사를 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1964년 5월 24일 페루 리마 국립경기장에서 페루와 아르헨티나가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격돌했다. 아르헨티나는 후반 15분 선취점을 올렸지만 후반 35분 한 수비수가 자기 편 골대에 공을 차 넣고 말았다.

그러나 우루과이 출신 주심은 동점골을 무효로 선언했다. 페루 선수들이 강력히 어필했지만 경기는 속개됐다.

그 순간 한 청년이 스탠드를 뛰어넘어 심판에게 돌진했다. 주먹다짐이 벌어지자 경찰이 출동해 이 청년을 제압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야유와 함께 물병과 의자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주심은 경기종료시간을 5분 남겨둔 채 종료 휘슬을 불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4만여 명의 관중은 스탠드를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그라운드는 아수라장이 됐다.

다급한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경찰견을 풀었다. 관중은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출구는 3개만 빼고 잠겨 있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밟히고 깔렸다. 담장을 부수고 탈출한 관중들은 폭도로 변했다. 이들은 경기장 주변에 불을 지르고 정부청사로 몰려가 “과잉진압 내무장관은 사퇴하라”고 외쳤다.

이날 경기장에서 318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 시위는 다음 날까지 이어져 페루 체육회가 습격당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결국 계엄령을 선포했다.

페루는 2001년 월드컵 예선 때도 관중 난동으로 홈경기 박탈 위기에 몰렸었다. 하지만 올해 월드컵 예선에서는 ‘중립국에서 관중 없는 경기’라는 징계를 받은 북한이 단연 ‘악동’의 지위를 차지한 듯하다. 북한과 같은 폐쇄사회의 군중조차 피 끓게 만드는 축구의 ‘마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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