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지명관 한림대 교수 대담

  • 입력 2005년 5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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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동아일보가 마련한 기획 대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오에 겐자부로 씨(오른쪽)와 지명관 교수. 오에 씨는 일본에서는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미옥 기자
23일 동아일보가 마련한 기획 대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오에 겐자부로 씨(오른쪽)와 지명관 교수. 오에 씨는 일본에서는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미옥 기자
《평화헌법 개정 시도 등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경계의 목소리를 높여 온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70) 씨가 한국을 찾았다.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24∼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할 ‘우리는 나지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제목의 발제문을 들고서. 이 발제문 제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본 전문가인 지명관(池明觀·80) 한림대 석좌교수가 23일 오에 씨를 만나 한일 현안 및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해 대담했다. 대담은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내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지 교수=오에 씨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학을 하면서 추구해 온 주제는 무엇입니까.

▽오에 씨=22세에 글을 쓰기 시작해 현재 70세이니 48년간 문학을 해 온 셈입니다. 일본 패전 10년 전 일본의 시코쿠라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종전 뒤 열 살 나이에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자유로워지니까요. 가난한 시골 태생으로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어 야스쿠니 신사에 가자’는 교육을 주입받다가 민주주의를 좋아하게 된 저 같은 아이는 일본 근대화 이후 처음 등장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진 나라 어린이 이야기를 써 보자고 생각한 것이 제 소설의 출발점입니다. 첫 장편소설 ‘죽은 자의 사치’가 그렇게 나왔죠. 하긴 그 주제가 제 평생 작품 활동의 종점일지도 모릅니다.

▽지 교수=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 등 최근 들어 시끄러운 문제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에 씨=최근 5년간 일본 사회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4년 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 파동 때도 비슷한 얘길 했지만 일본의 미래를 말하려면 반드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직시해야 합니다. 미래를 전망할 힘을 가지려면 적어도 같은 길이의 과거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물론 과거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일본인으로서는 괴로운 일이고, 그래서 과거를 제대로 알려는 용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그런 경우죠. 최근 5년간의 일본 사회의 퇴보는 일본인은 잘 못 느끼지만 주변에서는 확실히 보일 겁니다.

▽지 교수=밖에서 보기에도 일본이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을 줍니다. 세계화 시대를 부르짖는 한편에서 반(反)세계적인 폐쇄주의가 엿보입니다. 대단히 모순된 상황이죠.

▽오에 씨=말씀대로입니다. 제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여당, 재계가 전쟁 금지를 명문화한 헌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헌법을 바꾸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찾아옵니다. 군비를 강화하고 전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으로 봐선 일본은 전쟁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가나 재계 실력자들은 내게 ‘물정을 모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작가이며 전후에 생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희망을 버릴 경우 내 70년 인생, 40년 문학 활동이 헛된 것으로 돌아가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인 ‘9조의 모임’도 바로 그런 뜻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지방을 돌며 강연하고 있는데 그동안 2만5000명이 참여했고, 전국에 1500개의 소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강연회에 특히 여성과 노인들의 참여가 많습니다. 7월에는 1만 명 규모의 집회를 열 것입니다.

▽지 교수=한국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오에 씨=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지식인은 과거를 반성하고 양국 관계에 힘쓰면서 미래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에 크게 공감합니다. 과거를 생각지 않는 미래지향성이란 없죠. 사실 한국은 일본에 관대했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화해해야 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 교수=유럽의 지식인들이 연대하듯 아시아의 지식인이 연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아시아 지식인들과의 대화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 생각입니까.

▽오에 씨=먼저 자기 문학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 기본적인 교류의 자세입니다. 작가이므로 스스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것, 세계의 중심이 아닌 주변국에서 태어나 많은 사람이 쓰지 않는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많은 사람이 읽어 주는 작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의 문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 교수=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시겠지요. 전 앞으로 오에 씨가 여행기를 쓰면 독특한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오에 씨=지금은 3부짜리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소설가로서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말씀대로 젊은이들의 성장소설처럼 노인의 해외 모험기 같은 것을 써도 재미있겠지요. 죽기 전에 바라본 인간의 세계가 어떤 것이었던가.(웃음) 고독해진 노인의 눈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공의 인물과 (소설가니까) 대화하며 여행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드니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커집니다. ‘이 시대를, 이 사회를 살았고 그 과정에서 그 인간을 만났다. 70세까지 살아온 것은 낭비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죠.

▽지 교수=저도 80세까지 살아온 것이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정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 현 출생

-1957년 도쿄대 불문과 재학 중에 ‘사자(死

者)의 사치’로 데뷔

-1958년 ‘사육(飼育)’으로 아쿠타가와 상 수상

-1963년 ‘성적 인간(性的 人間)’ 발표

-1964년 ‘개인적 체험’ 발표

-1994년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 수상

●지명관 교수는

-1924년 전북 정읍 출생

-1954년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

-1974∼93년 일본 도쿄여대 객원교수, 교수

-2000∼2003년 KBS 이사장

-현 한림대 한림과학원 일본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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