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종족과 민족-그 단일과 보편의 신화를 넘어서’

  • 입력 2005년 5월 6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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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홍콩 스탠더 드지에 실린 만평. 홍콩정부 관료가 “홍콩이 중국의 뉴욕이 되기 바란다”고 말하는 뒤편에 홍콩행을 원하는 본토 자녀들이 줄지어 있다. 이는 본토인을 홍콩 발전의 걸림돌로 표현한 것이다.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홍콩인과 본토인으로 차별하는 의식의 이면에는 종족화의 어두운 그늘이 숨어 있다. 사진제공 아카넷
1999년 4월 홍콩 스탠더 드지에 실린 만평. 홍콩정부 관료가 “홍콩이 중국의 뉴욕이 되기 바란다”고 말하는 뒤편에 홍콩행을 원하는 본토 자녀들이 줄지어 있다. 이는 본토인을 홍콩 발전의 걸림돌로 표현한 것이다.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홍콩인과 본토인으로 차별하는 의식의 이면에는 종족화의 어두운 그늘이 숨어 있다. 사진제공 아카넷
◇종족과 민족-그 단일과 보편의 신화를 넘어서/김광억 외 지음/508쪽·2만3000원·아카넷

인류학은 서구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백인들이 식민지로 개척한 땅의 주민들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타자)로 딱지를 붙인 채 관찰하고 분류하고 특징짓는 학문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학은 식민지인의 특수성 찾기에서 벗어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찾음으로써 그 타자화가 야기한 폭력 착취 학살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국내 인류학자 11명이 공동 집필한 ‘종족과 민족’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부터 강대국 미국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종족성(Ethnicity)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종족성이라는 용어는 인종 민족 부족 사회집단 등의 용어를 포괄한다. 종족성은 인종에 비해 덜 생물학적이고, 민족에 비해 덜 정치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에서는 이 종족성이 선험적인 공동체 의식에 근거한 것이라는 원초주의 이론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발명된 것이라는 도구주의 이론이 있다. 최근 등장한 구성주의 이론은 양자를 결합해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원초적 공동체 의식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동원하느냐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살핀다.

270여 종족이 살고 있는 나이지리아에서 3대 종족으로 꼽히는 요루바족의 탄생 과정은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요루바족은 나이지리아 남서부 지역의 여러 종족이 19세기 영국의 식민화 과정에서 자신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으면서 만들어졌다. 선교의 목적으로 통일된 언어가 탄생했고, 역사상 한번도 통일된 정치 공동체가 없었음에도 19세기 초 비교적 넓은 땅을 다스렸던 오요 왕국을 중심으로 한 공통의 역사 만들기가 이뤄졌다. 이는 이보족과 하우사족 등 다른 큰 종족과의 치열한 정치적 경쟁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오요족 중심의 종족 정체성은 다른 하위 종족들의 반발을 낳으면서 새로운 분열양상을 빚고 있다.

종족화의 특징은 이처럼 그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척한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에서 비롯한 저주의 사슬로 묶여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피지의 종족 갈등도 피지 원주민과 노동력으로 대거 동원된 인도계 이주민 사이를 교묘하게 이간질한 영국 식민정책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성행하는 ‘한국인론’이 민족문화결정론이라는 점에서 일본 식민세력이 발명한 ‘조선인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지독한 편견과 차별도 결국 일제 식민지 경험의 반작용으로 민족주의 과잉이란 부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단일민족 신화는 1980년대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특히 해외로 이주한 일본인의 후예로서 일본으로 돌아온 니켓진(日系人)의 증가로 흔들리고 있다. 특히 남미 출신의 니켓진들은 자신들을 ‘올바른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일본인들의 차별에 저항해 자신들의 독특한 종족성을 강화함으로써 일본의 다민족성을 강화하고 있다.

홍콩인들이 중국에 귀속된 후 대륙 출신 중국인을 대륙인이나 신이민(新移民)으로 부르며 내부적 종족 경계를 발명하는 모습은 종족화의 이면에 숨겨진 배타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1999년 홍콩인이 중국 본토에서 낳은 자녀도 홍콩 거류권을 얻을 수 있다는 홍콩종심법원 판결에 홍콩 여론은 이를 인권운동 차원에서 환영하다가 그 수가 167만 명이라는 홍콩 당국의 발표에 180도 돌변해 본토 자녀의 거류권은 계속 거부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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