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살사-탱고 이어 젊음의‘춤 코드’로

  • 입력 2005년 4월 28일 1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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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의 정신은 자유다. 해군 복장의 커플들이 스윙 댄스를 추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스윙의 정신은 자유다. 해군 복장의 커플들이 스윙 댄스를 추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23일 오후 서울 신림동 사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마주칠 정도로 북적거리는 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이색적인 차림의 젊은이들이 나타난다. 영화 ‘사관과 신사’의 리처드 기어를 연상시키는 하얀색 해군 복장으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이들도 여럿 보인다. 여성은 너울거리는 플레어 스커트로, 남성은 흰색 정장에 멜빵 바지로 멋을 낸 커플도 있다.

이들을 ‘유혹’한 것은 바로 춤이다. 이들에게 춤은 자신을 담아내는 ‘몸의 언어’이자 그들만의 소통을 위한 ‘패스워드’다. 최근 ‘댄서의 순정’ 등 춤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되는가 하면 살사와 탱고 바람이 불기도 했다. 20대를 중심으로 젊음의 새로운 ‘코드’로 자리 잡은 스윙 댄스의 열기를 찾아간다.

○ 토요일 밤의 열기

‘빰빰빰 빠라밤∼.’

이날 오후 6시 스윙 재즈바 ‘부기우기’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흥겨운 음악이 귀를 때린다. 입구에는 ‘제13회 엔조이 스윙 졸업파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7주간 강습을 마치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다. 무기한 뒤풀이와 드레스 코드는 정통 복고풍이라는 문구도 있다. 아직 공식적인 행사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무대에서는 200여 명이 음악에 몸을 싣고 있었다.

‘고수(高手)’급 커플은 풍차처럼 몸을 돌리는 ‘윈드밀(Windmill)’이나 공중으로 뛰어올라 묘기를 펼치는 ‘에어리얼(Aerial)’도 연출했다. ‘스윙’ ‘스윙 키즈’ ‘말콤 X’ 등의 영화에서 본 듯한 동작이다.

스윙 댄스는 스윙 재즈에 맞춰 추는 춤이다. 스윙 재즈는 1920년대 말 흑인들의 ‘흔들거리는(Swing)’ 듯한 걸음걸이의 율동감을 담아 연주한 음악으로 40년대까지 유행하다 자취를 감췄다. 미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부활했고, 국내에서는 최근 춤 동호회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엔조이 스윙’은 35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온라인 동호회.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직장인과 대학생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비슷한 모임이 30여 개 있다.

이날 사관생도 복장으로 참석한 안순진(27·회사원) 씨는 “이번 강습을 마친 10명이 졸업 작품을 발표하는데 의상의 콘셉트가 ‘장교의 결혼식’”이라며 “튀는 복장으로 멋지게 졸업 파티를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윙 댄스의 매력은 묘기가 아니라 자유로움이다. 자신의 수준과 취향에 맞게 음악에 맞춰 연기하듯 춤을 춘다는 점이다.

2년 경력의 양승일(32·학원 경영) 씨는 “사귀는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가를 찾다 스윙 댄스에 빠졌다”며 “이 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구속받지 않는 해방감, 장르를 뒤섞어버리는 스윙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스윙에는 ‘춤의 애드리브’가 유난히 많다. 그는 직접 개발한 춤 동작을, 자신의 별명을 따 ‘췌키럽스 트릭’이라고 했다. 남들이 인정하거나 말거나 관계없다. 그의 별명은 힙합 맨들이 자주 쓰는 ‘체키럽’에서 따온 것이다.

이날 무대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들을 ‘스윙어(Swinger)’ 또는 ‘린디 하퍼(Lindy Hopper)’라고 했다. 린디 하퍼는 1920년대 뉴욕 할렘가의 사보이 볼룸에서 춤을 추던 댄서가 어떤 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시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을 따서 ‘린디 합’이라고 대답하면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윙의 특성상 먼저 음악에 빠진 뒤 춤을 나중에 배우거나 왈츠, 탱고 등 비교적 형식이 엄격한 모던 댄스를 배우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이끌린 경우가 많았다.

○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날 ‘린디베베’라는 팀은 가수 이승환의 노래 ‘못 말리는 봉팔이’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콘셉트? 최고로 느끼하면서도 재미있자는 것이란다.

‘…오늘도 귀찮아지겠군. 멋진 내가 참아야 하지. 한 둘이 아냐 저 수많은 걸(girl)들 헐레벌떡 허겁지겁 마구 쫓아오네∼.’

코믹한 노래에 춤이 어우러지자 폭소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스윙 재즈바에서는 음주나 흡연이 금지돼 있다. 황혼 무렵 시작한 이들의 파티는 춤과 휴식 시간의 대화만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별명을 ‘애니’(21)라고 밝힌 한 여대생은 “새벽 2시까지는 바에서 춤을 춘 뒤 다른 곳에서 뒤풀이를 가질 예정”이라며 “오늘 아마 밤 샐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흔들어 버리는 것’은 몸만이 아니다.

한국 무용에 이어 살사까지 섭렵한 정진남(36·초등학교 교사) 씨는 “남성의 리드가 절대적인 다른 커플 댄스와 달리 스윙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민주적이다”며 “자유로움이 배어 있는 스윙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밝혔다.

○ 춤에 빠져 사랑에 빠져

‘부기우기 3남매’도 유명하다. 자신을 ‘에어’(33)라고만 소개한 이 바의 대표는 2000년 초반 TV에서 스윙에 관한 뉴스를 접한 뒤 마니아가 됐다. ‘스카이’ ‘디디’, 두 동생과 함께 스윙 댄스를 배우다 성이 차지 않아 아예 바를 열었다.

스윙 파트너였다가 인생까지 스윙이 된 경우도 있다. 김효겸(28·은행원) 양연숙(27·회사원) 씨 커플은 4년 경력의 김 씨가 초보자인 양 씨를 가르치다 인생 파트너가 됐다. 이들은 “사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둘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함께 스텝을 밟다 보면 금세 풀린다”고 말했다.

동호인 팬들의 ‘오버 걸’이라는 환호 속에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황유진(29·학원 강사) 씨는 “스윙은 1년만 제대로 배우면 에어리얼같은 고난이도의 동작도 가능하다”며 “복장이 야하지 않고 접촉도 심하지 않아 ‘끼’가 없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가장 인기없는 사람은 춤을 못 추는 사람이 아니다. 표정이 어두운 사람이 바로 최악의 스윙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스윙 댄스 에티켓▼

△춤은 거절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남성은 여성의 춤을 거절할 수 없다.

△여성이 남성의 춤 신청을 승낙한 경우 음악이 끝날 때까지 중단하면 안 된다.

△파트너와 동행한 경우 첫 곡과 마지막 곡은 반드시 파트너와 춘다.

△계속 같은 파트너와 춤을 추지 않는다.

△술 냄새를 풍기며 춤을 추지 않는다.

△상대방 춤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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