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김정희교수 ‘내가 본 베네딕토 16세’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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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여성 신학자인 김정희(金貞熙·67) 전남대 국민윤리교육과 명예교수는 신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서 배웠던 제자다. 김 교수가 20일 교황과의 인연 등을 담은 글을 본보로 보내 왔다.》

나는 조선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고 싶어 1966년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루르드에 평신도 사도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에서 1년 동안 성서공부에 매진하다 본격적으로 철학을 파고들고 싶어 독일로 갔다.

신학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던 나에게 마인츠 교구 추기경께서 “꼭 소개시켜 주고 싶은 교수님이 있다”며 그분을 찾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그분이 다름 아닌 이번에 교황이 되신 요제프 라칭거 교수님이셨다. 그때 나는, 추기경님으로부터 라칭거 교수님의 저서 한 권을 건네받았는데 이것이 결국 나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 책은 라칭거 교수님이 튀빙겐대교수로 계시면서 쓰신 ‘그리스도 신앙의 입문’(장익 주교가 ‘그리스도 신앙 입문, 어제와 오늘’로 번역 출간)이라는 책이었다. 당시 유럽 교회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교회의 변신을 주문했던 획기적인 책이었다. 문장도 깊이 있고 아름다웠다.

나는 라칭거 교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69년 겨울부터 교수님이 튀빙겐대에서 레겐스부르크대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 학교에 등록했다. 그리고 7년 동안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동안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스승께서는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나를 누구보다도 따뜻한 관심으로 이끌어 주셨다. 학생들과의 세미나 자리에서나, 맥주를 마시는 뒤풀이 자리에서도 늘 나를 옆 자리에 앉혔고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돈이 없어 고생은 하지 않는지 물어 보셨다.

지금도 나는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에 스승님께 편지를 보내는데 바쁜 와중에 한번도 답장을 거르신 적이 없다.

1980년 여성 신학박사 1호로 귀국했지만 강사 자리조차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나는 스승님께 편지를 썼다. 그때 스승님께서는 “준비 안 된 땅에서 견뎌내야 할 고통이 많을 줄 안다. 화내지 말고 힘들어 하지 말고 오라는 데 가서 응답하고 하느님을 증거하라”는 답장을 보내 주셨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등으로 어두웠던 시절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고 결국 1983년 전남대 교수로 부임했다.

2001년 생신 때, 전 세계 제자 50여 명이 로마에서 신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가족까지 초대해 저녁 식사를 베푼 뒤 추기경 예복을 그대로 입고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며 “항상 몸 건강해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던 나의 스승님 베네딕토 16세. 겸손하고 따뜻하며 중도의 철학을 가지신 그분과 세계 교회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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