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200살 해인사에 변화의 바람…조경-행정 개선나서

  • 입력 2005년 4월 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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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완연한 합천 해인사를 찾은 조경 전문가 정영선 씨(왼쪽에서 두번째)가 경내를 돌아보며 주지 현응 스님(왼쪽) 등 관계자들에게 사찰 조경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합천=허문명 기자
봄빛이 완연한 합천 해인사를 찾은 조경 전문가 정영선 씨(왼쪽에서 두번째)가 경내를 돌아보며 주지 현응 스님(왼쪽) 등 관계자들에게 사찰 조경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합천=허문명 기자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는 봄빛이 완연했다. 잔뜩 물이 오른 나무들이며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와 산수유, 꽃이 터지기 직전의 벚꽃 등은 서울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과는 아주 달랐다.

봄 향기 가득한 해인사에 지난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앞 전통정원 ‘희원(熙園)’을 만들고 조경설계회사 ‘서안’을 운영 중인 정영선 대표. 주지 현응 스님이 사찰 조경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우리나라 조경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를 초청한 것이다.

“여기 이 나무들은 뽑아 버리는 게 좋겠고요. 저 담은 좀 더 안전하게 고쳤으면 좋겠네요.”

정 대표는 “해인사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법당, 탑 등 서 있는 그대로가 보물인 아름다운 건축물들 때문에 따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동안 관리가 소홀했던 점이 옥에 티”라고 말했다.

정 대표와 함께 해인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스님들은 “언뜻 전통사찰에 무슨 조경일까 생각했는데, ‘조경은 만드는 게 아니라 치우는 것’이라는 정 대표의 설명을 듣고 보니 수행과 생활 공간인 사찰이야말로 환경미화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200년 고찰로 한국 불교의 종가(宗家)인 해인사가 변하고 있다. 이번 환경미화 프로젝트처럼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실을 기하는 조용한 개혁바람이 불고 있는 것. 해인사 개혁은 ‘수행 도량으로 거듭나기’에 맞춰져 있다. 이 같은 방침은 지난해 11월 4차례 열린 해인총림 및 교구발전위원회 토론회를 통해 정해졌다.

교구발전위원장을 맡았던 원택 스님은 “허심탄회한 토론에서 수행 풍토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제기됐고, 해인사는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진정한 수행과 정진 도량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우선 해인사는 불학(佛學)연구소를 세울 계획이다.

한때 강원(속세의 대학)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인사에만 있었다. 수많은 유명 선사, 강사들을 배출하는 바람에 스님들이 ‘공부하려면 해인사로 가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다른 큰 절에서도 강원 교육을 시작하면서 해인사 강원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기획위원장 남일 스님은 “단지 불경을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강사와 연구인력을 배출할 대학원급의 연구소를 세워 깊이 있는 불학 연구와 특강, 정례 세미나를 통해 이 시대에 맞는 불교 철학을 정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사찰 최초로 5월 22일 외국어 학림도 문을 연다. 이 학림은 24시간 영어만 쓰는 ‘영어마을’ 형태로 운영되는 2년제 교육기관으로 우선 조계종 비구니 스님 15명을 신입생으로 받을 예정이다.

그 외에도 종무행정 전문화를 위해 종무실을 새로 만들고 종무행정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이나, 말사(末寺)들이 해인사에 내던 교구 분담금을 지역사업에 쓰도록 한 자치행정, 해인총림 운영에 비구니 스님과 젊은 스님을 대거 참여시킨 행정개혁도 눈에 띈다.

주지 현응 스님은 “스님들은 열심히 수행 정진하고 일반인들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인사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면서 “이를 위해 가을에는 팔만대장경의 문화적 의미를 살린 문화축제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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