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한 도산 안창호선생 맏딸 안수산 여사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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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라 없이 자라고 아버지 없이 산 사람이 돼서…한국에 오면 너무 즐거워요. 아버지가 ‘청년 없으면 나라가 죽는다’고 하셨는데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활기차 보여서 기쁩니다.”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1878∼1938) 선생의 맏딸 안수산 여사(사진)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시절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6일 기자회견에서 영어로 통역해 질문을 듣되 반드시 한국어로 답했다. 올해 여든여덟 살인 그의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웅변하듯 힘이 있었다.

안 여사가 한국을 찾은 직접적 계기는 자신의 전기 ‘버드나무 그늘 아래’(문학세계사)의 한국어판 출간 때문. 열한 살 때인 1926년 아버지를 본 것이 마지막인 안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해 미국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가 됐다. 아버지의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너희가 미국 사람으로 잘 되더라도 절대 한국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의 비밀정보 분석가로도 활동한 안 여사는 현재 로스앤젤레스 한인역사박물관 이사, 로스앤젤레스 3·1 여성동지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도산 선생과의 인연으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자리를 함께 한 강영훈 전 국무총리와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자 안 여사는 자랑스러운 듯 연방 미소를 지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도산 선생은 가족을 돌보지 못했지만 안 여사를 비롯해 3남2녀의 자녀와 아내 등 누구도 굶주리며 살았다든가 하는 고통을 토로한 적이 없어요. 이런 가족이 있었기에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는 점을 오늘날 한국인들이 알았으면 합니다.”(강 전 총리)

아버지의 말씀 중 특히 가슴에 새기는 한 구절을 묻자 안 여사는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라고 답했다.

안 여사는 7일 오전엔 중앙여중고교 창설자인 고 황신덕(黃信德) 여사의 유지를 기려 이 학교를 방문해 특별강연을 하고, 11일엔 흥사단 창단 90주년 대회에 참석한 뒤 13일 출국한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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