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희망 0순위' 강남경찰서는…경찰들 '강남 짝사랑'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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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남경찰서. 해마다 인사철에 서울경찰청이 실시하는 근무 희망지역 조사에서 전체 경찰관의 절반 이상이 희망 근무처로 꼽는 곳이다. ‘일 많고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경찰서로 옮기기를 희망하는 경찰관은 거의 없고 서장이 말단 순경에 대한 인사 조치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온갖 ‘배경’과 ‘연줄’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곳은 경찰 내의 ‘복마전’으로 통한다. 서울경찰청은 14일 경위 이하 강남서 직원 710여명 중 약 20%에 해당하는 151명을 전출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말은 제주도, 경찰은 강남(?)=수년 전 강남서에는 ‘누구와 누구가 강남을 반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중간간부급 경찰관 2명이 강남 일대의 유흥업소를 마치 절반씩 이권을 나누듯 관리했다는 의미. 소문의 사실 여부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중 한 명은 나중에 업자들로부터 6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강남서가 전출 희망 0순위인 것은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 일이 많아 실적을 올리기도 좋지만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승진의 2대 요소인 ‘돈과 유력인사’들에 대한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강남서 형사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높은 데서 (온갖 사건) 부탁전화가 끊이지 않았다”며 “잘 처리되면 식사 한번 하게 되고 그러면서 높은 분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사소한 폭행이나 교통사고 사건이라도 여기저기 선을 대 부탁하는 우리 관행상 경찰관들이 유명인사나 고위 공직자를 알게 될 기회는 널려 있게 마련이라는 것.

이 때문에 ‘반장(경위급)만 되도 (뒤를 봐주는) 줄 하나씩은 다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통한다.

실제로 DJ 정권의 후광이 남아 있던 올해 3월까지 파출소장 14명 중 8명, 과장 11명 중 7명이 호남 출신이었다. 또 승진을 할 경우 상사에게 적지 않은 액수의 승진 인사를 하는 것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

▽끊이지 않는 비리=지난달 말에는 이 경찰서 형사인 한모씨(36)가 증권브로커로 활동한 김모씨(32)를 납치한 뒤 가족들에게 35억원을 요구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또 지난해 9월에도 석 달 전 사표를 낸 고모 형사(35)가 모 증권사 지점 김모 과장(33)을 납치해 2억5000여만원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2001, 2002년 강남서 직원들의 징계건수는 각각 20명(7.5%)과 26명(13.8%)으로 서울지역 경찰서 평균 8.3명(3.1%), 5.8명(3.1%)보다 2∼4배가량 높았다.

▽용두사미로 끝난 물갈이=최근 들어 경찰 내부에서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자 서울청은 14일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의 경감 이하 1900여명에 대한 대규모 인사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강남서의 경우 이근표(李根杓) 서울청장은 전체(715명)의 21.1%(151명)만 교체하는 데 그쳤다. 이는 최기문(崔圻文) 경찰청장이 강남서의 전면 물갈이를 요구한 데 비하면 용두사미 물갈이로 끝난 셈이다.

그나마 절반이 넘는 84명이 파출소 직원들로 채워졌으며 형사, 수사, 교통, 방범의 경우 4개 과를 합쳐 불과 49명을 옮기는 데 그쳤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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