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가볍게 입자 신나게 살자

  • 입력 2003년 7월 10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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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킨 에트로가 프레젠테이션의 전시물 ‘삶의 순환’ 앞에 서 있다. 가족, 회사 직원 등의 사진을 찍어 실제 크기로 현상해 설치한 이 전시물을 통해 킨은 윤회사상을 경쾌하게 표현했다. 계단 왼쪽에 키 순서로 서 있는 세 어린이 사진은 킨의 아들들. 밀라노=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에트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킨 에트로가 프레젠테이션의 전시물 ‘삶의 순환’ 앞에 서 있다. 가족, 회사 직원 등의 사진을 찍어 실제 크기로 현상해 설치한 이 전시물을 통해 킨은 윤회사상을 경쾌하게 표현했다. 계단 왼쪽에 키 순서로 서 있는 세 어린이 사진은 킨의 아들들.
밀라노=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10∼20분 내에 수십 점의 옷을 선보이는 패션쇼는 의상 하나 하나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반면 프레젠테이션은 브랜드 컨셉트에 맞게 꾸민 장소에서 관람객들이 마치 매장을 둘러보듯 시간을 충분히 갖고 옷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전시형식이다. 이 때문에 쇼를 여는 것이 입소문을 더 많이 타게 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프레젠테이션을 택하는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다.

움직이는 열차 안 혹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패션거리 몬테나폴레오네에서 우차(牛車)를 앞세워 쇼를 열어 화제가 됐던 에트로 남성복은 2004년 봄·여름을 겨냥한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 기간(6월22∼26일)에 프레젠테이션을 택했다. 이번 컬렉션 기간에 열린 20여개 프레젠테이션 가운데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행사로 꼽혔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23일 오후 밀라노 스파타코 거리의 에트로 본사 1층 홀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의 제목은 ‘비 예술 페스티벌(Non Art Festival)’.

만화 같은 전시물과 사람 실물 크기의 사진, 무언가를 절여놓은 듯한 큰 유리병 등 유머러스한 디자인의 설치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에트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남성복 디자이너인 킨 에트로(39)는 “이 전시회는 전혀 예술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예술의 또 다른 얼굴은 돈이죠. 그래서 저는 예술이 아닌 재미(fun)를 추구하려 해요.”

사람들을 가장 미소 짓게 한 전시물은 욕조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그림. (오른쪽 맨 위 사진)검은색 페인트로 사람 윤곽만 그린 2차원적인 만화인데도 왠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중요한 부위’는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오렌지색 사각 수영복이 가려주고 있었는데 조금만 끌어 내리면 아찔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나 이를 장난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킨 에트로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곤 했다.

“누가 수영을 하고 있는 걸까요? 남자? 아니면 수영복?”

이번 컬렉션은 ‘가벼움’을 테마로 삼고 있다. 가는 면사로 만든 190g짜리 셔츠와 180g짜리 리넨 팬츠 등 특수 공법으로 제작해 매우 가벼워진 의상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옷에 사용된 패턴도 나비 또는 앵무새 등 날개가 있는 동물들에서 주로 따왔다. 이탈리아인들이 자주 쓰는 보디랭귀지를 구사하고 있는 모델들의 사진을 벽면에 가득 전시한 것도 ‘가벼움의 표현’이다. 킨 에트로는 “제스처는 말보다 더 가벼운 의사소통 수단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패밀리 브랜드

동양만큼이나 가족관계를 소중히 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터를 닦은 에트로는 탄탄한 가족 경영 구조를 자랑한다. 킨 에트로의 아버지 짐모 에트로(63)가 1968년 브랜드를 창시해 특유의 ‘페이즐리 무늬’로 명성을 떨쳤고 3남1녀가 속속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했다. 현재 장남 야코보(41)는 직물 및 가죽부문 담당, 셋째아들 이폴리토(36)는 재무담당을 하고 있다. 둘째아들 킨과 막내딸 베로니카(29)가 각각 1997년과 1999년 남성복 및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로 취임했다. 킨이 이끄는 남성복 부문은 지난 한해 매출이 42%나 성장했다.

“가족이 함께 일하면 의사소통이 잘 돼요. ‘가족과 가문을 위해 번다’고 생각하니 동기부여도 잘 되는 것 같아요. 한국처럼 가족 문화를 소중히 하는 나라에서 에트로가 인기를 끄는 것도 제품에 은연 중 배어 있는 우리 브랜드의 가족적인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킨을 격려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한 베로니카는 “하지만 우리 모두 회사를 떠나서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아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중심은 유일하게 에트로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잡는 편이죠. 제3자의 눈으로 비판을 해줍니다.”

행사장에서 플래시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전시물은 유아기에서 노년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 7명이 계단 위에 층층이 서 있는 사진이었다. 제목은 ‘삶의 순환(Circle of life)’.

낮은 계단의 어린이 세 명은 킨의 아들인 조이스, 스완, 제로라모. 꼭대기의 남성은 에트로의 재무파트 임원이고 오른쪽 노인은 이 임원의의 아버지다.

“저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믿어요. 노인이 죽은 뒤 다시 아이의 몸을 빌려 태어난다는 것….”(킨)

‘2세대’까지 안착한 에트로의 가족경영이 ‘3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베로니카는 “킨 오빠의 딸 엘리스가 패션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답했다.

이날도 등이 훤히 파인 섹시한 상의에 골반바지를 입고 나타나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주의’를 받은 킨의 장녀 엘리스(16)는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는 요청에 흔쾌히 예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반면 부인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에트로의 창시자 짐모는 인터뷰 요청에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라”며 고사했다.

밀라노=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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