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노 대통령의 '원정경기'

  • 입력 2003년 7월 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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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은 각국 지도자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러 지도자들이 만나면 혼자 있을 때 드러나지 않던 장단점이 부각되고, 정상 사이의 우열이 가려진다.

지도자의 능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자 정상회담은 ‘정상들의 백병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품은 물론이고, 현안에 대한 지식과 협상력 등 국익 실현을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이 1 대 1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동기자회견이라도 하게 되면 일반 국민에게까지 지도자들의 우열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래서 정상회담은 훌륭한 지도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쪽과 부실한 지도자로 인해 부끄러워하는 쪽으로 양국 국민을 가르게 된다.

다음주로 다가온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정상들의 인물 비교라는 시각으로 관전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국민 앞에 처음으로 함께 선다. 우리 국민과 중국 인민이 인물 비교를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노 대통령에게 중국 방문은 운동경기로 말하자면 ‘원정경기’나 마찬가지다. 북핵문제 조율 등 현안 자체가 만만치 않은 데다 낯선 땅에서 일면식도 없는 강대국 지도자를 만나야 하니, 타국에서 강적을 상대로 타이틀전을 벌여야 하는 복싱선수에 못지않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긴 앞서 있었던 미국과 일본 방문 역시 힘든 원정경기였다.

원정경기의 핸디캡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신을 피력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정상회담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치명적이다. 국내에서처럼 이상한 논리로 얼버무릴 수도 없고, 이것저것 동원해 반박하기도 어렵다.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준비다. 국가 지도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은 벼락공부로 키울 수 없는 것들이다. 부족한 능력은 양국의 현안과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대좌를 위해서는 비교적 준비를 잘 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은 상대적으로 준비가 소홀했다. 준비가 잘 됐다면 현충일에 일본 천황과 만찬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방일 첫날 일본 참의원이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무례한 대접’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오래 전에 집권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지도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 대통령에게 처음부터 큰 성과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 방문은 다르다. 노 대통령과 후 주석의 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취임 100여일을 넘긴 ‘초보 지도자’다.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라는 난제로, 후 주석은 사스 위기를 통해 지도자로 단련을 받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한중 정상회담은 이래저래 흥미로운 게임이다. 관전자인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선전을 바랄 것이다. 오죽하면 ‘노무현이 후진타오를 이기려면’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왔을까. 회담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지도자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노 대통령은 귀국할 때 국민의 표정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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