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학]신비스런 성호르몬

  • 입력 2003년 6월 22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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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발기하지 않는 젊은이에게 딸을 주지 않는 것은 과학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노총각이 가을에 유독 외로움을 느끼는 데에도 과학적 이유가 있다. 40대까지만 해도 동창회에 아내를 떼놓고 가던 남성이 50대에 아내 없이 혼자 동창회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것도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얼추 전혀 달리 보이는 세 가지 경우의 둥지에는 '성호르몬'이 똬리 틀고 있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은 청년기에는 하루 중 아침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중년 이후에는 이런 차이가 서서히 없어진다. 청년기에 남성호르몬이 이런 정상적 분비 시스템을 보이지 않으면 성기능 뿐 아니라 감정, 독립성 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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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철의 성보고서

또 남성호르몬은 1년 중 가을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며 따라서 '가을남자'라는 말이 생기는 것이다. 노총각이 여러 계절 중 유독 가을을 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성은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면서 여성적으로 바뀌어 아내에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호르몬을 알면 스쳐 지나갔던 여러 일들이 왜 그런지 의미가 새로워지며 가정을 보다 행복하게 가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잘 알려진 대로 남성호르몬은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호르몬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인체의 여러 호르몬 중 성 행태 뿐 아니라 성격, 감정과도 가장 관련이 깊다.

남성에게서 남성호르몬은 주로 사춘기 이후에 대량 분비돼 '남자'를 만들고 유지시키는데 18∼20세에 분비량이 최고조에 오르고 서서히 감소한다. 매일, 매년 일정한 시기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지지만 큰 변화는 없다. 반면 여성호르몬은 매일, 매년 바뀌면서 생리, 임신 등에 따라 급격히 바뀐다.

따라서 남성의 성격과 성 행태가 비교적 단순한 반면, 여성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남성은 부드럽게, 여성은 강하게=대구 한 병원의 최모 교수(36)는 최근 본가에 들렀다가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무심코 안방 문을 열었더니 평생 어머니를 억누르고 윽박질렀던 아버지가 걸레로 방을 닦고 있었고 어머니가 뒷짐을 진 채 아버지에게 제대로 걸레질을 잘못한다고 타박을 주고 있었던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성호르몬을 알면 해답이 보인다.

남성호르몬은 남성, 여성호르몬은 여성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남성에게도 여성호르몬이, 남성에게도 여성호르몬이 있으며 중년이 지나면 남성에게서는 여성호르몬, 여성에게서는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즉 'E2-T 비율'(Estrogen과 Testosterone의 비율)이 바뀌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50대부터 여성적인 면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60대가 되면 행동과 태도에서 여성적인 면이 고착되고 70대가 되면 신체에서도 여성적인 모습이 나온다.

즉 50, 60대에는 사소한 일에도 섭섭하게 생각하고 했던 얘기를 반복하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40대까지만 해도 자녀를 심하게 몰아쳤던 남성이 50대 이후에는 오히려 자녀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이러다가 70대가 되면 근육이 흐물흐물해지고 젖가슴이 축 처지는 등 몸의 형태까지 여성으로 바뀐다.

반면 여성은 폐경기 이후 E2-T 비율의 변화에 따라 여러 양상을 보인다.

많은 여성은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남성호르몬은 별 변화가 없다. 따라서 중년 여성은 독립적이고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남편이 작은 일에도 삐치는 반면 여성은 '그만한 일 갖고…'하며 대범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함께 줄어 성욕을 비롯한 욕구가 줄고 몸 전체가 피로해지며 우울해진다. 여성 중 상당수는 50대 이후 강해지지만 일부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으며 약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호르몬을 알고 바꾸자=노령의 부부는 호르몬 때문에 심신이 바뀐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상당 부분 풀 수 있다. 자녀들도 부모의 바뀐 모습과 역학관계를 알아야 제대로 '효도'할 수 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은 근육과 뼈의 건강, 인지 기능 유지 등에 큰 역할을 하는데 남성은 30대부터 적절히 운동하고 과음을 삼가면 안드로겐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과음을 하면 알코올 때문에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을 만드는 라이디히 세포들이 '몰사'하며 간에서 여성호르몬을 제거하지 못해 E2-T 비율이 높아진다. 모주망태들의 가슴이 축 처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남성호르몬은 지방 조직에 풍부한 아로마타제라는 효소에 의해 여성호르몬으로 바뀌는데 운동을 통해 지방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남성다움'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도움말=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임승길 교수,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성원 교수,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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