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전혀 달리 보이는 세 가지 경우의 둥지에는 '성호르몬'이 똬리 틀고 있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은 청년기에는 하루 중 아침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중년 이후에는 이런 차이가 서서히 없어진다. 청년기에 남성호르몬이 이런 정상적 분비 시스템을 보이지 않으면 성기능 뿐 아니라 감정, 독립성 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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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성호르몬은 1년 중 가을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며 따라서 '가을남자'라는 말이 생기는 것이다. 노총각이 여러 계절 중 유독 가을을 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성은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면서 여성적으로 바뀌어 아내에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호르몬을 알면 스쳐 지나갔던 여러 일들이 왜 그런지 의미가 새로워지며 가정을 보다 행복하게 가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잘 알려진 대로 남성호르몬은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호르몬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인체의 여러 호르몬 중 성 행태 뿐 아니라 성격, 감정과도 가장 관련이 깊다.
남성에게서 남성호르몬은 주로 사춘기 이후에 대량 분비돼 '남자'를 만들고 유지시키는데 18∼20세에 분비량이 최고조에 오르고 서서히 감소한다. 매일, 매년 일정한 시기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지지만 큰 변화는 없다. 반면 여성호르몬은 매일, 매년 바뀌면서 생리, 임신 등에 따라 급격히 바뀐다.
따라서 남성의 성격과 성 행태가 비교적 단순한 반면, 여성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남성은 부드럽게, 여성은 강하게=대구 한 병원의 최모 교수(36)는 최근 본가에 들렀다가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무심코 안방 문을 열었더니 평생 어머니를 억누르고 윽박질렀던 아버지가 걸레로 방을 닦고 있었고 어머니가 뒷짐을 진 채 아버지에게 제대로 걸레질을 잘못한다고 타박을 주고 있었던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성호르몬을 알면 해답이 보인다.
남성호르몬은 남성, 여성호르몬은 여성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남성에게도 여성호르몬이, 남성에게도 여성호르몬이 있으며 중년이 지나면 남성에게서는 여성호르몬, 여성에게서는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즉 'E2-T 비율'(Estrogen과 Testosterone의 비율)이 바뀌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50대부터 여성적인 면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60대가 되면 행동과 태도에서 여성적인 면이 고착되고 70대가 되면 신체에서도 여성적인 모습이 나온다.
즉 50, 60대에는 사소한 일에도 섭섭하게 생각하고 했던 얘기를 반복하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40대까지만 해도 자녀를 심하게 몰아쳤던 남성이 50대 이후에는 오히려 자녀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이러다가 70대가 되면 근육이 흐물흐물해지고 젖가슴이 축 처지는 등 몸의 형태까지 여성으로 바뀐다.
반면 여성은 폐경기 이후 E2-T 비율의 변화에 따라 여러 양상을 보인다.
많은 여성은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남성호르몬은 별 변화가 없다. 따라서 중년 여성은 독립적이고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남편이 작은 일에도 삐치는 반면 여성은 '그만한 일 갖고…'하며 대범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함께 줄어 성욕을 비롯한 욕구가 줄고 몸 전체가 피로해지며 우울해진다. 여성 중 상당수는 50대 이후 강해지지만 일부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으며 약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호르몬을 알고 바꾸자=노령의 부부는 호르몬 때문에 심신이 바뀐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상당 부분 풀 수 있다. 자녀들도 부모의 바뀐 모습과 역학관계를 알아야 제대로 '효도'할 수 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은 근육과 뼈의 건강, 인지 기능 유지 등에 큰 역할을 하는데 남성은 30대부터 적절히 운동하고 과음을 삼가면 안드로겐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과음을 하면 알코올 때문에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을 만드는 라이디히 세포들이 '몰사'하며 간에서 여성호르몬을 제거하지 못해 E2-T 비율이 높아진다. 모주망태들의 가슴이 축 처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남성호르몬은 지방 조직에 풍부한 아로마타제라는 효소에 의해 여성호르몬으로 바뀌는데 운동을 통해 지방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남성다움'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도움말=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임승길 교수,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성원 교수,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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