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한달전 CSK배 수모뒤 '합숙훈련'…후지쓰배서 설욕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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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방에 바둑판과 돌 좀 갖다주세요.”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후지쓰배 8강전에 출전한 이창호 유창혁 9단, 이세돌 7단과 송태곤 4단은 대국 하루전 동행한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대국 전날에는 가볍게 시내관광을 하며 긴장을 푸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호텔방에 틀어박혀 대국 상대인 일본 기사의 기보를 연구했다. 가수 ‘보아’의 열성팬인 송 4단만 일본에서 발매된 ‘보아’의 음반을 사기위해 잠깐 외출했을 뿐이었다.

이들의 각오가 이전과 달랐던 것은 한달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CSK배 바둑아시아대항전’에서 일본에 참패해 한국의 세계대회 연속 우승기록이 23연승에서 중단됐기 때문.

송 4단은 “당시 한국 기사들이 ‘내가 져도 다른 사람이 이기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이번엔 축구 한일전과 마찬가지로 ‘한번 질 수 있어도 연패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말했다.

마침 8강전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당시 일본에 패한 멤버여서 더욱 필승 의지를 다졌다는 것.

대국 당일. 지난 CSK배 우승에 고무된 일본 팬들은 대국장 인근에 마련된 500석 규모의 해설장을 가득메웠고 일본 기사 50여명도 검토를 위해 몰려들었다. 오전 대국에는 한국 기사 모두 형세가 불리해 ‘혹시 0 대 4로 지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7단이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9단에게 역전승을 거둔 데 이어 송 4단이 다카오 신지(高尾新路) 8단에게 짜릿한 반집승을 일궈냈고 이 9단도 313수의 혈전끝에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4집반승을 거뒀다. 유 9단만 초반 불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에게 불계패했다.

CSK배 패배를 앙갚음한 한국 선수단은 이날 인근 술집에서 만취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마셨다. 미성년자인 송 4단만 콜라로 속을 달랬다.

4강전은 다음달 5일 이세돌-요다, 이창호-송태곤의 대결로 열린다.

도움말=한국기원 양형모 과장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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