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북한경제와 한반도 통일'

  • 입력 2003년 6월 13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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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와 한반도 통일/박순성 지음/347쪽 1만8000원 풀빛

북한은 여전히 우리에게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대상인가보다. 경제학자가 쓴 북한 경제서마저 결국은 철학과 인문학의 심연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같은 심정을 굳히게 된다. 연일 ‘북한 문제’가 초점이 되고 있는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하게만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고 단언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자(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실증과 계량이 곧 현실이라는 정통 논법을 거부하고 북한의 경제현실을 찾아가는 대안적 탐색으로 시작한다. ‘경제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 제한되어 있을 때’, 그 사회의 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이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매개물이라는 저자의 접근법은 북한학의 오랜 방법론적 대립을 실천적으로 지양해내며 북한의 현실을 우리 앞에 복원시켜 준다.

이 같은 저자의 접근법은 지난해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인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분석하는 데서도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이냐 계획이냐는 흑백논리의 적용을 거부하고 저자는 먼저 북한지도부의 입장에서 그들의 정책 의도를 분석하는 예의를 잃지 않는다. 이에 기초해 현실운동의 역동성을 그려낸다. 지도부의 의도와 달리 북한의 경제현실은 시장경제체제를 향한 변화의 첫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저자의 진단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고 빨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론에 동의하느냐를 떠나서 말이다.

북한의 현실 변화에 대한 진단을 마친 저자는 ‘한반도경제’라는 관점에서 서서히 칼날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2부와 3부를 읽는 내내 독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유(浮游)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와 ‘분단체제’에 서 있는 남북관계, ‘교류 협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나’의 관성과 ‘우리’의 타성을 준열히 꾸짖는 글 솜씨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소위 ‘퍼주기’라는 선동적 용어가 동원된 논란에서 어떤 가치들이 어떤 규모로(비등가성) 어떤 순서에 따라(비동시성) 교환됐는가는 검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도적 지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저자의 꾸짖음은 전쟁의 상처와 냉전적 사고에 젖어 있는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성찰하게 하는 촉매제임이 틀림없다.

패권을 거부하지만 탈(脫)패권의 대안들이 모두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는 ‘탈패권의 딜레마’에 빠진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해법은 오로지 분단체제의 ‘해체와 극복’에 있다. 통일된 한반도를 협력과 평화의 균형추로 해야 한다는 ‘협력의 균형추’ 구상은 저자의 단순한 정치 산술을 넘어 후학의 의무로 다가오는 무게감이 있다.

이 책은 다소 어렵지만 근본적으로 실천적인 글이기에 명쾌하고 정곡을 찌르는 쾌감이 있다. 이 한 권의 책은 ‘북핵’으로 뜨거울 이번 여름을 울고 웃으며 지낼 또 다른 일상을 마련해준 것 같아 후발 북한학도로서 내내 즐겁기만 하다.

이정철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rheeplan@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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