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순씨,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에 보낸 편지내용]

  • 입력 1999년 11월 30일 23시 59분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가 연초 사직동팀의 내사를 받은 하루 뒤인 1월17일 김태정(金泰政)당시 검찰총장에게 옷로비의 ‘내막’을 기술한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A4용지 9쪽짜리에 ‘검찰 총장님 전상서. 총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연정희(延貞姬)씨의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형자(李馨子)씨가 자신을 통해 영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에게 남편(최순영회장)의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는 것이 골자.

그러면서 여러 대목에서 영부인이 라스포사의 단골고객임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영부인통해 남편구명 이형자씨 로비시도"

그러나 이 편지는 기본적으로 정씨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연씨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내용의 신빙성이나 누군가가 이 시점에 편지를 공개한 배경 등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구체적이어서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씨는 이 편지에서 “총장 사모님(연씨)이 자술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는데 정씨의 남편 정환상(鄭煥常)씨는 30일 “연씨가 사직동 내사시작 직전인 1월13일이나 14일경 옷 배달과 관련된 자술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다”고 시인했다.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은 “내사가 시작된 것은 15일”이라고 밝힌 바 있어 연씨가 사직동 내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우리집에서 저녁식사" 영부인과 친분 과시

정씨는 영부인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자신과 영부인이 매우 친한 관계임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영부인을 A사모님으로 암호를 사용해 부르고 있다”거나 “(영부인이)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함께했다”는 부분,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투서한) 목사님들이 다녀갔느냐고 물었더니 ‘오지도 않았다고 그러시대요’”라고 적은 부분 등이다.

이형자씨가 자신을 통해 영부인에게 로비를 하려 했다는 부분은 훨씬 구체적이다. 그가 적시한 부분은 다섯가지다.

△외화밀반출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려 달라 △자기 소개책자를 전해 달라 △횃불선교회에서 간증해 달라고 전해달라 △영부인 독대자리를 만들어 달라 △육포와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다.

정씨는 또 “(이씨가)마지막으로 저희 집에 찾아왔을 때도 총장 사모님이 의외로 정도 많고 단순하고 솔직하니 꼭 찾아가서 직접 부탁드려 보시라”고 권했다는 내용도 적었다.

정씨는 이 편지에서 호피무늬 반코트 전달에 대해서는 연씨를 감싸고 반면 배정숙(裵貞淑)씨는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배달경위에 대해서는 “600만∼700만원 하는 것이지만 총장님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150만원 정도에 드리고 싶어서 직원이 말도 하지 않고 넣어드렸다”고 “배달받은 사실을 몰랐다”는 연씨 주장을 편들고 있다.그러면서 “배씨에게는 화를 냈다”는 등 배씨가 연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을 고해 바치기도 했다.

정씨는 편지를 쓰기 전인 17일 낮 당시 인천지검장인 전용태(田溶泰)씨의 부인 최호자씨와 함께 김전총장의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최씨는 정씨의 오랜 지인으로 연씨 등을 정씨에게 소개한 인물.

★배정숙씨 강력비난…내용 신빙성 의문많아

이때문인지 정씨는 “인사이동을 한달 앞두고 이런 저런 일이 있어 저도 가슴이 아팠다”며 “그 집에 가보니 모범적인 가정으로 보였다”는 등 김전총장에게 은근히 ‘인사청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편지는 사직동팀 조사요원2명이 라스포사를 찾아와 옷로비의혹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다음날인 17일 저녁 당황해 김전총장집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긴급히 작성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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