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애인의 날이 더 서러운 장애인

  • 입력 1998년 4월 19일 19시 33분


오늘은 제18회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게는 축제일이고 정상인에게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날이 돼야 한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들에게 축제는커녕 더욱더 서러운 날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한파’가 장애인들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장애인복지예산 삭감에 이어 각 지자체들도 잇달아 장애인복지기금 설치를 취소하거나 삭감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하철역 등의 휠체어리프트와 엘리베이터 장애인변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계획도 예산삭감으로 잇달아 취소되거나 유보되고 있다. 경제난에 따른 긴축예산 편성의 불가피성은 이해되나 장애인 관련예산이 다른 예산보다 우선적으로 삭감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업들이 장애인부터 해고하는 사례가 많은 것 역시 우려되는 일이다. 기업들이 불경기를 이유로 보호해야 할 장애인을 먼저 해고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런 가운데 전경련이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한 장애인고용촉진법의 폐지를 정부에 건의해 장애인단체가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장애인고용에 매우 소극적이다. 법률상 장애인의무고용률이 상시근로자의 2%로 돼 있으나 현재 민간기업의 장애인고용률은 0.4% 정도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쪽보다 장애인 1인당 20만2천원으로 돼 있는 부담금을 무는 쪽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장애인보호의무를 대신하는 셈이다. 그러다가 경제난을 이유로 장애인고용촉진법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전경련의 이같은 요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처사다. 우리 헌법에는 ‘신체장애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이러한 헌법정신에 따라 생긴 법이다. 장애인보호는 국가의 의무이나 기업도 일정 부분 그 의무를 나눠 질 책무가 있다. 선진국들도 장애인의무고용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경제불황 등의 상황에서도 장애인은 최우선적으로 고용돼야 하며 최후로 해고돼야 한다’는 유엔의 장애인복지계획에 담긴 선언을 우리 기업들은 새겨봐야 한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은 폐지돼선 안된다. 오히려 기업들의 장애인고용부담금을 현행보다 올리고 정부와 지자체의 장애인고용의무를 강제규정으로 바꾸는 등 장애인고용촉진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장애인의 90%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생긴다. 이 수치는 누구나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장애인을 ‘남’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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