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이동선/런던 지하철의 통로왼쪽 비워두기

  • 입력 1998년 4월 13일 08시 14분


런던을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런던의 지하철은 대부분의 통로가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돼 있다. 1백년 전에 건설한 지하철이지만 승강장이 땅속 수십m 이상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영국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출근 시간에는 얌전히 서서 가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보면 급할 때도 질서가 있고 무언의 규칙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런던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급한 경우가 아니면 오른쪽에 서야한다. 왼쪽은 주로 양보 통로이기 때문이다.

연결되는 차시간이 급해서 서둘러 승강장에 가야할 사람이나 정말로 성질이 급해서 습관적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을 위해 왼쪽은 늘 비워두어야 할 통로다.

요즘 언론들을 통해 영국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영국은 세계를 제패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비능률과 지나친 사회보장,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해 70년대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한때는 제조업의 공동화로 인한 극심한 실업문제를 겪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투자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훌륭한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본을 받는데도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영국 지하철의 양보 관행이 좋다 해도 아침 출근길에 발디딜 틈 없는 우리 지하철 출구에서 급한 사람을 위한 공간을 남겨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우리 현실과 정서에 맞아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너무 남만을 알려고 들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국인이 가진 근면성과 높은 교육열, 성실함과 추진력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도 갖지 못한 장점이다. 이런 장점에다 우리 실정에 맞는 좋은 제도와 정책을 곁들인다면 영국 이상의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동선(KOTRA 런던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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