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브라질]가족사랑도 좋지만…

  • 입력 1997년 3월 11일 08시 35분


브라질인의 넘치는 가족사랑 때문에 겪은 곤혹을 생각하면 브라질에서 한치 벗어난 발음의 「우라질」이 절로 떠오른다. 지난해 우리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즈음해 현지 공업인 모임인 F라는 단체와 양국 경제인을 위한 경제포럼을 개최한 적이 있다. 양측에서 각각 주제발표를 하기로 했는데 준비과정에서 F측이 연사를 추가하겠다고 해 그의 발표를 행사일정에 포함시켜 업무를 추진했다.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사전에 원고를 제출하도록 매일 요청했으나 연사는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간병하느라 원고작성을 못했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었다. 결국 포럼 당일 아침에 원고를 주겠다는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통역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 주최측에 틀림없게 해달라고 단단히 부탁했다. 그러나 회의 직전 날벼락을 맞았다. 상대 주최측에서 추가로 선정한 연사의 주제발표는 없던 일로 해달라는 얘기였는데 사유는 아들의 병환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이 일을 우리 경제인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이다 사실 그대로 보고하고 말았지만 당시의 낭패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브라질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현지 체육부장관이 부인의 해산을 이유로 2일간 집무를 하지 않거나 「단일중앙노동조합」 위원장 역시 부인이 해산을 하게 됐다며 대통령과의 면담약속을 갑자기 깨뜨렸다. 상원의장과 하원의장 또한 현지 방문중인 체코대통령의 예방약속을 시장선거에 출마한 자당 후보자 지원유세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크게 보면 자당 출마자도 자식에 비유될 수 있을 게 아닌가. 최근 한국에 초청된 연사가 연설원고 제출을 지연하고 있어 마음 한구석에는 은근히 그가 갑자기 자식문제로 못간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박중근(상파울루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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