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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이끌 감독들]장진/장르 넘나드는 발상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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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이끌 감독들]장진/장르 넘나드는 발상의 귀재

입력 2000-01-13 21:05수정 2009-09-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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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새로움에 대한 요구와 친숙한 것에 대한 편안함 사이에서 긴장하고 다툰다. 관객은 까다롭게도 두 가지 기대를 동시에 주문한다. 늘 보던 것이면 쉽게 싫증내고, 낯선 것이면 선뜻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제작자나 감독, 기획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경계가 어디인가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일이 절대 과제다.

장진 감독은 그 대목에서 반짝인다. 자유로운 발랄함과 기발한 능청을 앞세우면서도 사람을 감싸는 따뜻함을 함께 버무려낸다. 사이버 시대의 감성을 지녔지만, 아울러 평범한 다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정서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매체별 고유영역 파괴▼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98년)은 새로운 감성을 지닌 영화감독의 등장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지뢰처럼 터지는 웃음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더 색다른 것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 연극 장면이 필요하면 망설임없이 끌어오고, 뮤지컬이나 개그의 요소도 주저하지 않고 섞어낸다.

얼굴없는 범인들이 억센 사투리로 주고받는 통화내용을 표준말 자막과 함께 보여주는 역발상은 만화같기도 하다. 장진은 매체별 고유영역과 스타일을 무시한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연극 만화 개그 등 필요하다면 어떤 매체의 요소라도 끌어다 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저없이 장르를 넘나들며 해체와 혼합을 시도하는 그의 자유로운 감각과 순발력은 신세대적이다.

두 번째 영화 ‘간첩 리철진’(99년)에서도 그의 개성은 유감없이 묻어난다.

특수훈련을 받은 간첩이 택시강도에게 짐을 몽땅 털리고, 고정간첩은 처자식 건사하느라 심신이 피곤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상살이의 힘겨움에 동감한다. 조국과 민족과 이념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강철같은 간첩이 아니라 어딘가 느슨하고 처량한 모습이다. 신선한 의외성이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신세대적 순발력 강점▼

하지만 장진을 또래의 젊은 감독들과 구분짓는 핵심은 영화 속의 웃음이 세상을 통찰하며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한다는 점이다. 평생을 바람처럼 떠돌다 딸에게 구박받는 늙은 도둑과 그의 친구인 국밥집 주인,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려는 청년, 범인은 못잡고 애꿎은 시민만 닦아 세우는 형사들(이상 ‘기막힌 사내들’), 강도에게 당하는 남파간첩, 청소년 문제 상담을 하면서도 제 자식이 문제아로 자라는 것을 막지 못하는 고정간첩(이상 ‘간첩 리철진’) 등은 누구도 인생의 승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인간-세상 통찰력 탁월▼

장진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꿈과 희망을 보듬는다. 관객은 세대를 넘어 자화상같은 그들을 보면서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파편처럼 튀는 그의 웃음이 결국 묵직한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코미디라는 양식 안에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고정관념과 매체의 장르적 특성을 해체하는 자유로운 발상과 운영, 인간을 통찰하며 감싸는 시선. 이 두 가지의 편안한 결합은 그만의 강점이자 한국영화의 가능성이다.

조희문(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장진감독 프로필▼

△71년 서울출생

△95년 서울예전 연극과 졸업

△95년 ‘천호동 구사거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허탕’으로 예장문학상 희곡 부문 당선

△연극 ‘허탕’ ‘택시 드리벌’ ‘매직타임’ 연출

△영화 ‘엘리베이터’ ‘개같은 날의 오후’ ‘삼인조’ 각색

△98년 ‘기막힌 사내들’ 각본, 연출

△99년 ‘간첩 리철진’ 각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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