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g이상 야윈 ‘무쇠팔’…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 Array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건강? 괜찮다니깐… 야구장 꼭 돌아가야죠”

지난달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출신 선수들의 친선경기에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모교인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에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출신 선수들의 친선경기에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모교인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에 서 있다. 연합뉴스
“비 오는데 웬일이오? 오늘은 야구 안 하나?”

목소리는 여전히 씩씩했다. 언제나 그랬듯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53). 요즘 그는 야구판을 떠나 있다.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을 끝으로 자유인이 됐다.

그는 시속 150km 강속구와 폭포수 같은 커브로 마운드를 군림했던 불세출의 스타다. 위기에 몰려도 ‘칠 테면 쳐 보라’는 식으로 정면 승부를 했던 강심장이었다.

최 전 감독은 7월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한 야구 행사에 나타났다. 모교인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졸업생들이 맞붙은 이벤트 경기였다. 짧은 머리에 금테 안경은 그대로였지만 몸은 야위었고 배는 불룩했다. 경기에도 나서지 않았다. 2007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던 그였기에 주위의 걱정은 컸다. 하지만 그는 건강 악화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한때 몸무게가 100kg이 넘었어요. 식이요법과 단식을 너무 욕심내 하다 보니 30kg 이상 살이 빠졌죠. 야구팬이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 걱정 마세요.”

그와 지난달 26일과 3, 7일 전화를 했다. 수차례 만나자고 했지만 그는 “먼 곳에 있다. 나중에 보자”며 손사래를 쳤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는 끝내 밝히지 않은 채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라고 했다.

“강원도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요. 맑은 공기 쐬면서 산에 오르고 산책을 하죠. 집(경기 고양시 일산)에는 언제 갈지 몰라요. 아들도 군대에 보냈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살아 봐야죠.”

최 전 감독은 야구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제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야구는 그의 가슴속에 있었다.

○ 무쇠팔, 야구 지도자의 꿈은 진행 중

창원을 연고로 한 제9구단 NC 다이노스의 김택진 구단주는 자신의 우상을 ‘최동원’이라고 했다.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최 전 감독에게 NC에서 감독직 제안을 받으면 수락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창원은 고향 부산과 인접한 곳이어서 친숙하다. 불러준다면 멋진 팀을 만들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선수들의 개인 특성과 코칭스태프 구성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다는 거였다.

“야구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내가 가진 열정을 쏟아 부을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욕심은 버렸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병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 프로야구 이끌 수장의 야구 사랑

그는 KBO 새 총재에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추대됐다는 소식을 반겼다. 경남고 선배인 구 회장에 대해 “야구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많은 기업인은 처음 봤다. 이해타산 없이 야구를 좋아하고 묵묵히 후배들을 돕는 분”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모교 경기는 물론이고 지난해 야구 대표팀 경기를 보러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까지 찾을 정도로 야구를 챙깁니다. 프로야구 수장으로서 큰일을 해 줄 것으로 믿어요.”

○ 박찬호, 한국서 마무리하되 신중해야

최 전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의 국내 복귀에 대해선 “돌아올 여건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야구를 시작한 만큼 한국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좋다는 얘기였다.

“박찬호는 세계적인 선수입니다. 고국 팬 앞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죠. 다만 올해 일본에서 1승(5패)에 머물렀고 2군에 내려간 상태에서 국내 복귀 의사를 밝힌 건 아쉬움이 남아요.”

최 전 감독은 건강 이야기를 꺼내면 “어휴, 몸 괜찮다니까”라며 역정을 냈지만 야구 소식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라며 신바람을 냈다. 2009년 KBO 경기운영위원 시절 기자와 만나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매일 보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던 모습과 닮았다.

통화 말미에 최 전 감독에게 “건강 잘 챙기고 빨리 돌아오시라”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짧은 한숨소리가 흘렀다. 그러고는 “고마워요. 천천히 준비해 꼭 돌아갈게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 최동원은? ::

△1958년 5월 24일생 △경남고, 연세대 졸업 △주요 경력: 1978∼82년 국가대표. 1983∼88년 롯데, 1989∼90년 삼성 선수. 2006∼2008년 한화 2군 감독.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 △주요 기록: 1984년 최다승(27승 13패 6세이브), 최다 탈삼진(223개)으로 최우수선수 선정,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1패). 1984∼87년 4년 연속 두 자리 승리.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에 평균자책 2.46, 탈삼진 1019개.

▼ “빨리 나아라, 그래야 다시 캐치볼도 하지”… 동갑내기 이만수 감독 ▼

“(최)동원이는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죠.”

프 로야구 출범 30년째를 맞아 최고의 전설(레전드)로 선정된 이만수 SK 2군 감독(사진)은 최동원 전 감독을 “당대 최고의 투수”로 꼽았다. 둘은 1958년생 개띠 동갑내기다. 이 감독은 대구중, 최 전 감독은 토성중 시절 청주에서 열린 문교부장관기 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둘은 고교, 대학, 프로에서 선의의 경쟁자였다.

이 감독은 최 전 감독을 뜨거운 야구 열정을 가진 친구로 기억했다. 강한 어깨에 연투를 밥 먹듯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둘은 국가대표 시절 배터리(투수와 포수를 함께 일컫는 말)를 이룬 적도 있다. 이 감독은 “동원이의 강속구는 정말 묵직했다. 역동적인 투구 폼은 언제 봐도 멋졌다”고 말했다. “동원이 때문에 내가 손해를 많이 봤죠. 삼성 시절에 우승을 한 번도 못했거든요. 동원이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거둔 4승은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일 거예요.”

이 감독은 그런 최 전 감독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가슴 아파했다. 강원도 외진 곳에 머물고 있는 친구는 그에게 “나는 추억이 많아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감독은 “동원이에게 ‘빨리 건강해져라. 그래야 다시 캐치볼도 하지’라고 농담을 했다”며 “그의 쾌유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