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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식탁과 찻상 위의 멋 찾아… 외국인도 중년부인도 도예공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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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식탁과 찻상 위의 멋 찾아… 외국인도 중년부인도 도예공방 순례

동아일보입력 2010-11-05 03:00수정 2010-1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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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 사기막골에서 만난 아기자기한 도자기 그릇들. 전통의 멋과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생활자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천=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그 옆집 ‘흙누리미’에 들렀다. 이곳의 생활자기들은 옛 정취와 현대적인 감각이 적절히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튀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한 개성이 넘쳤다. 그 위에 편안함과 차분함이 더해 있었다.

이처럼 사기막골 거리의 공방들은 저마다 자기의 색깔이 분명했다. 작가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어디를 가도 실망스럽지 않은 작품 하나쯤은 만날 수 있어 보였다. 이 거리에서는 가을 햇살이 유난히 반짝였다.

도자기 고장으로서 이천은 유서가 깊다. 비옥한 흙과 맑은 물, 좋은 소나무처럼 도자기를 만드는 재료들이 풍부해 오랜 옛날부터 도자기가 특산물이었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천 도자기가 진상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도자기 마을은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이천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이후 쇠퇴했던 전통 도자 산업은 1950년대 말 유명 도예가들이 이천에 모이면서 다시 살아나게 됐다는 것. 고명순, 김완배, 지순택, 유근형 선생 등이 이천 도예의 부활을 이뤄낸 초기의 거장들이다. 이천시 신둔면과 사음동 일대에 도예가들이 모여 형성한 도예촌은 1960년대부터 그 수를 늘려 1980년대 중흥기를 맞게 됐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성공적인 재현과 그 궤를 같이한다. 지금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진취적인 성향의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들도 꽤 많이 터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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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시작된 이천 도자기축제는 이천 도자기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작은 전시회에서 출발한 이천 도자기축제는 1998년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5대 축제’에 선정될 정도로 발전했다. 2001년부터는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공예 부문 ‘창의도시’다.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천이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된 것은 올해 7월이다. 현재 세계 17개 나라 25개 도시가 유네스코로부터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영국의 에든버러, 미국의 아이오와, 이탈리아의 볼로냐, 벨기에의 겐트, 일본의 가나자와, 독일의 베를린 등이 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 이천은 창의도시 선정을 계기로 2013년까지 신둔면 일대 40만 m² 용지에 도자기 제작시설과 전시, 교육시설, 체험시설 등을 갖추는 이천 도자예술촌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진과 중견을 막론하고 이천에 자리 잡은 작가들의 관심은 쉴 새 없이 변해가는 현대의 생활양식과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쓰임새 없는 도자기는 죽은 도자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해강고려청자연구소의 시도는 이런 고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이다. 해강요는 고려청자 재현의 선구자인 고 유근형 선생이 설립한 이천 지역의 대표적인 요장이다. 2대인 유광열 작가도 대한민국 도자공예부문 명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런 해강요가 지난해부터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손잡고 ‘청자 리디자인, 리바이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청자에 서양 산업디자인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고려청자를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자기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서려 있다. 유근형 선생의 손자인 해강고려청자연구소 유재형 실장은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이라며 “동서양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도자기가 장식장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쓰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강도요의 김판기 작가(오른쪽)가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김 작가는 빗살무늬 토기에서 영감을 얻은 청자작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천=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전통적인 청자 작품을 주로 만들어온 백천도예의 황순석 작가도 최근 머그 모양의 1인용 다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3년 이천에 공방을 낸 뒤로 줄곧 대형 화병이나 항아리 투각 작품 등을 만들어온 그다. 생활자기라고 해도 모란 문양 다구 세트처럼 전통적인 청자의 미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전통 문양을 살리면서 생활에 실용적인 작품도 함께 만들겠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 선반에는 상감 작업 중인 1인용 다기와 작은 호리병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지강도요의 김판기 작가는 빗살무늬 토기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청자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얻은 이 작품들은 겉은 마치 토기나 목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황토색이지만 안쪽은 청자의 비색이 살아 있는 그릇의 연작들이다. 거친 황토색과 투명한 푸른색은 그 자체로 대비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묘한 균형이다. 김 작가는 “워낙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에 제법 비싼 가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입해간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독특한 생활자기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중년 부인들, 또는 신혼부부들의 예물로 인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 3 차를 연구하는 박동춘 씨는 “제대로 된 차 맛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청자 다완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차 맛을 살려줄 새로운 도자기 그릇을 찾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50대 주부 김현미 씨는 “음식을 놓을 때 여백이 어울리는 멋스러움이 좋아 큰 도자기 접시를 쓴다”고 했다. 사기막골에서 공방 ‘산아래’를 운영하는 유정희 씨는 “요리 동호회 회원인 주부들이 주로 생활자기 구입을 위해 가게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른둘 젊은 주부 조정화 씨가 도자기 공예를 배우는 이유는 ‘나만의 그릇’을 갖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때문이다.

이렇듯 유리 그릇, 플라스틱 그릇이 범람하는 요즘도 도자기는 장식장이 아닌 찻상과 식탁 위에서 제자리를 찾고 있다. 변하지 않는 도자기 본래의 가치는 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이천=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도움: 이천시청, The 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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