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노숙자 늘어나… 여성 노숙자 대책 시급

  • 입력 2008년 12월 12일 15시 37분


경제 한파로 벼랑 끝까지 몰린 노숙자들이 다시 늘고 있다. 한동안 감소세였던 노숙자 수는 올 연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각종 대책과 시설을 마련했지만 노숙자 수는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노숙자 대책이 남성 노숙자위주로 되어 있어 여성 노숙자에 대한 보완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숙자 중에는 자녀를 동반한 노숙자도 있다.

서울시의 노숙자 수는 2005년 3164명, 2006년 3178명, 2007년 2929명으로 감소했다가, 올해 다시 3009명(11월 기준)으로 늘어났다. 이중 시설에 입소한 노숙자들은 2454명,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은 555명이다. 여성은 192명, 남성은 2817명이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특성상 실제 노숙 인구는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노숙인 재활봉사단체인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는 알려진 수의 10배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복지기관에서도 최근 노숙인들의 상담전화가 늘거나, 무료급식소를 찾는 수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노숙자 문제에 대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가 노숙자를 위해 쓰는 예산은 1년에 200억원이다. 보호시설 제공 등 자활사업은 물론이고 서울역 영등포역 주변 거리상담소 5곳과 쉼터 41곳에서 급식과 세탁 등 생활편의와 거리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서울시 노숙자 주요 사업 200억대◇

동아닷컴이 입수한 2009년도 서울시 예산안 중에는 노숙자에 직접적인 혜택이 있는 주요 사업 예산은 227 억원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숙인 일자리 갖기 지원 사업 54억원, 노숙인 쉼터운영 사업 93억원, 의료구호사업이 53억원, 거리 노숙인 보호사업 27억원 정도였다. 2008년도와 비교하면 노숙인 일자리 갖기 지원 사업은 2억9000, 노숙인 쉼터운영 사업은 4700만원, 의료구호사업은 15억원, 거리노숙인 보호사업은 3800만원이 늘어난 수치다. 이 안은 시의회에서도 거의 삭감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올해 예산 집행내역을 보면 노숙인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 의해 근로능력이 있는 노숙인 440명에게 일자리가 주어졌다. 건설현장이나 녹지관리, 자원재활용, 복지관련 업무 보조 일을 하고 받는 일당은 2~7만원이다. 한달에 22일까지 일할 수 있어 참가자들은 50~140만원씩 받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 능력이 미숙한 사람들에게는 특별자활근로사업이 주어지는데 460명이 참여 중이다. 이들은 단순 취로와 급식 보조 일을 하고 일당 2만 1000원씩 한달 평균 30만9000원을 벌었다.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 중 희망자 25명은 직업전문학교에서 6개월에서 1년간 교육을 받는 중이다.

‘신용 Restart 사업’으로 신용불량 노숙인(입소 노숙인의 30% 신용불량자 추정) 중 신청자에 한해 신용회복도 도왔다. 2000만 원 이상 금융채무자 129명은 개인파산과 면책 신청을 지원, 2000 만 원 이하 채무자 44명은 개인채무조정 신청 지원, 221명은 건강보험료 체납금 결손 처분을 했다.

노숙인 주거지원 사업으로 600여명에게 혜택이 주어졌다. 지속적인 일자리 참여로 독립 여건이 갖춰진 노숙자의 경우 ‘자활의 집’이라는 전세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다. 현재 자활의 집 40호에서 104명이 거주중이다. 이 곳은 2년간 입주할 수 있고 1회 연장이 가능하다. 이 밖에 근로 능력이 미약한 거리의 노숙자들은 특별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할 경우에 쪽방 입주 지원이 된다. 11월 현재 500여명이 입주중이다.

이 밖에 노숙인 건강관지 지원 사업으로 연 4400여명이 혜택을 입었다. 결핵 검진은 거리 노숙인 대상 연 2회씩 총 1200여명이 받았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노숙자들을 비롯한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정신적 동기를 부여하는 6개월 과정의 정규대학 교양수업 ‘휴먼 서울시민, 인문학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노숙자 스스로 자존감 회복, 시설 위주의 정책도 바뀌어야”◇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붓는데도 왜 노숙인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을까. 거리에서 쉼터로 들어갔다가 다시 거리로 돌아오는 이들이 많아 ‘노숙인 회전문 현상’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삶의 방식만 바뀔 뿐 노숙인 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무료급식소가 많아져 거리에서 배부르게 먹고 교회에서 주는 구제금을 받아 술을 사먹거나 경마장에서 탕진하는 사례도 있다. 돈이 떨어지면 센터나 시설로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일할 능력이 있어도 안한다는 보도도 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제도권에 대한 노숙자들의 ‘심리적인 저항감’이나 ‘잘못된 생활습관’이 노숙자 대책을 실패로 만든다고 지적 했다. 또한 ‘시설 입소, 거리노숙 근절’이라는 서울시의 정책 모토 자체가 수정돼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노숙자 무료급식소 작은 예수회 소망의 집 관계자는 “시설입소의 경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니까 힘들어하고 쪽방 생활을 하려 한다. 아무래도 오랜 노숙생활로 음주나 생활습관을 쉽게 바꾸기 힘들다”며 “노숙자들 중 재활의지가 있는 분들을 봉사자로 채용해도 말도 없이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식사를 하러 오는 노숙인 들에게 200원 씩 받고 있다고 했다. 적은 돈이나마 그들의 자존감을 일깨우려는 의도라고 한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김해수 실장은 “거리 노숙과 쉼터 노숙만으로 노숙자 문제를 보는 당국의 시각”이라며 “쉼터와 거리 노숙을 아우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쉼터에서 받는 ‘신용 회복’, ‘기초 생활 수급자 혜택’, ‘일자리 지원’을 거리의 노숙자들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노숙자들은 저학력-저기술자로 자활 의지가 있어도 경쟁 체제에서 적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게다가 일반인의 10배 이상 만성 질환을 앓고 있어 의존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 근로 능력이 미숙한 노숙인들이 한달에 받는 30만 9000원으로는 한달에 20만 원 이상 되는 집세를 낼 수도 없다. 그는 이들이 쉼터에 들어가기 싫어한다면 주거지가 없어도 국민기초생활 보장 등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력 위험에 노출된 여성 노숙인◇

이 밖에 노숙자 대책이 지나치게 남성 위주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여성 노숙자들은 남성 노숙자와 같은 선상에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여성단체의 시각이다.

여성 노숙자 발생의 원인 중에는 가정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폭력을 피해 찜질방 같은 데 있다가 돈이 떨어지면 거리로 나오게 된다.

얼마 전 노숙을 하던 소녀가 남자 노숙자들에게 억울하게 맞아 죽은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거리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 남성 노숙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워낙 척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선지 경찰에 잘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복지기관 담당자들은 전했다.

자녀를 동반한 모자 가정이 있다는 점도 여성 노숙자들만의 특성이다. 다만 노숙자 시설이 아닌 모자가정 시설에 수용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여성 노숙자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열린여성센터에는 12월 현재 30명의 여성 노숙인들이 입소해 있는데 이중 자녀를 동반한 모자가정은 셋이나 된다.

열린여성센터 김진미 소장은 “여성 노숙자들은 기본 시설이 부족하고 수용정원이 부족한 편이라 입소 문의는 많지만 다 받지 못하고 있다”며 “남성은 갑작스런 추위나 폭력 상황에 응급상담보호센터에서 보호받고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여성은 응급상담보호센터가 없어 긴급보호대책이 요원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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